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다. 배우자, 친구, 스승과 제자, 선후배, 이웃 등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항로가 바뀌는 게 인생이다. 운명 같은 ‘좋은’ 상대를 찾는 건 당연하다. 그래야 스트레스 덜 받고 즐거운 나날이 많은 값진 인생이 보장된다. 그런데 이 ‘좋다’는 게 참 묘하다. 누구나 좋다고 평가해도 자신에게 안 맞을 때가 많다. 자신과는 잘 어울리는 사람도 다른 사람과는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상대적인 게 바로 인간관계다. 그래서 궁합(宮合) 얘기가 나온다.
박지성(아인트호벤)의 경우는 궁합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선수는 감독 복(福)을 타고나야한다. 독불장군은 없다. 서로 통해야 만개할 수 있다. 일본에 진출한 2000년 이후 박지성의 14년을 되돌아보면 감독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박지성의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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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과 히딩크는 찰떡궁합이었다. 한국을 2002월드컵 4강으로 이끈 사제지간으로, 둘을 떼놓고는 2002년을 논할 수 없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으로 불러들여 빅리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해준 것도 히딩크였다. 적응이 힘들 때도, 부상을 당했을 때도 히딩크는 늘 곁에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스승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은 또 다른 위대한 스승이다. 박지성은 아인트호벤 소속으로 뛴 2004∼200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AC밀란(이탈리아)과 경기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친 뒤 다음 시즌 퍼거슨 품에 안겼다. 이후 7년간은 ‘소리 없는 영웅’으로 각광 받으며 축구인생의 황금기를 꽃피웠다. 박지성은 “퍼거슨은 내게 믿음을 줬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 법.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지난 시즌 QPR 이적은 어쩌면 극적인 요소가 아니었을까. 시즌 초반 마크 휴즈 감독 후임으로 온 해리 레드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리그 20경기에 출전해 골은 없고 4도움.
올 시즌은 네덜란드로 향했다. 아인트호벤 코쿠 감독과는 8년 전 선수로 함께 뛰었기에 소통이 가능한 사제지간이다. 박지성은 AC밀란과 챔스리그 플레이오프와 리그 경기에서 베테랑의 위용을 과시했다. 리더의 품격을 보여주며 존재가치를 확인시켰다. 코쿠의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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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의 사례는 해외 이적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타산지석이 될만하다. 구단 명성이나 연봉 등도 고려해야겠지만 자신의 가치를 빛내 줄 감독과의 궁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하자.
스포츠 2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