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시라이 몰락 이후
아내의 영국인 독살, 심복의 배신과 망명 시도, 총리의 공개 비판, 정치 스타의 낙마, 권력투쟁 등 중국 정가를 뜨겁게 달궜던 1년 9개월의 ‘드라마’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22일 산둥(山東) 성 지난(濟南) 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시 서기의 재판은 중국 현대 정치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보 전 서기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공산당 최고지도자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자리의 유력한 후보였다. 공산당 8대 원로로 꼽히는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아들이라는 막강한 집안 배경에다 랴오닝(遼寧) 성장과 상무부장을 지낸 실무 경력,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까지 더해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는 정치국원으로 5년 전만 해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함께 4대 천왕의 한 명으로 불리며 공산당 총서기 물망에도 올랐다.
보 전 서기는 중국 4대 직할시 중 하나인 충칭을 맡아 이른바 ‘충칭 모델’을 창조했다. 정통 사회주의를 앞세우고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민생 개선에 나섰고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폭력조직을 무자비하게 소탕해 중국 국민의 찬사를 받았다. 또 공산당 혁명가요(紅歌) 부르기와 혁명 역사 강조 등으로 좌파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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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가 여전히 많은 충칭 모델이 공식 폐기됐음을 보여주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그가 몰락한 뒤 충칭 시가 대규모 빚더미에 앉아 있고 충칭 모델을 위해 온갖 위법행위가 자행된 게 드러났다. 공산당 새 지도부는 이번 재판을 계기로 부패 척결에는 위아래가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올해 초 부패 척결과 관련해 “호랑이와 파리를 함께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 시 주석의 언급이 최근 다시 부각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