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윈스 광팬 김범수 씨의 ‘미워도 미워할 수 없었던’ LG 응원기
김범수 씨는 “LG 야구를 끊겠다”며 지인들에게 LG 관련 물품을 모두 나눠줬지만 딱 하나 ‘유광점퍼’만은 간직하고 있다. ‘유광점퍼’는 광택이 나는 LG의 봄가을용 점퍼로, LG팬들에게는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의 상징이다.김범수 씨 제공
16년 만이래. 16년. 그때는 1위가 당연한 걸로 생각했어. 우승한 게 불과 3년 전이었고 다음 해(1998년)도 준우승을 했잖아.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알았겠어?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는지.
그해(1997년) 병규, 그래 ‘적토마’ 이병규가 신인왕이었는데 ‘그냥 받을 만하니 또 받았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 우리는 서울 팜(farm·연고지)이고 유망주들이 차고 넘친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LG 출신 신인왕도 병규가 마지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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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씨는 2004년 11월 29일 서울 잠실야구장 앞에서 구단의 운영 방식에 항의하며 삭발 시위를 벌였다.
현대 정명원(현 두산 코치)이 1998년에 한국시리즈 우승하고 “(최)창호(현 넥센 코치)가 여기 없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얘기했잖아.(최창호는 이 시즌 중 현대에서 LG로 트레이드됐다) 오늘 딱 그 생각이 들더라. 재현이랑 같이 좋아할 수가 없는 거야.
LG 응원하면서 언제가 제일 마음 아팠는지 알아? 재현이가 “LG가 미운데, LG를 미워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을 때였어. 나도 LG가 정말 미운데, LG를 미워하는 게 너무 힘든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순철 감독(현 KIA 코치)이 우리 감독이었는데 내가 앞장서서 ‘순철아, 우리는 네가 창피하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싶었겠어?
그런데 이상훈(현 고양 원더스 코치)까지 쫓아냈잖아. 진짜 끔찍했어. ‘그들’은 감독-고참-신참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관계를 끊어 놓으려고 안달이었으니까.
그러니 팀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있나. (2005년 5월에) 두산을 상대로 7연패에 빠진 뒤 무료입장 이벤트 했던 거 기억하지? (LG가) 두산에 졌던 경기의 티켓을 가져오면 무료로 입장시켜 주던 거. 그때 선수라는 인간이 한다는 말이 “그럴 여유 있으면 연봉이나 더 달라”는 거였어. 모래알도 그런 모래알이 어디 있겠냐고. 선수들이 LG만 떠나면 MVP(최우수선수)가 되는 것도 이상한 일만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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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일 안타까운 게 그 많던 LG 유니폼, 사인볼 같은 거 마구 나눠줘서 몇 개 안 남았다는 거야.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면 가지고 있는 건데…. 야구장도 더 많이 가고, 욕할 시간에 박수 한 번 더 쳐주는 건데…. 맞다. 너도 LG 유니폼 한 장 받아 가지 않았냐?
21일 LG가 2위로 내려앉으면서 ‘LG 천하’도 하루 만에 끝났다. 어쩌면 LG는 이번 시즌 내내 다시 1위 자리를 되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3년 8월 20일은 LG 팬들의 심장 아주 특별한 곳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기쁨보다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주던 LG를 믿고 기다린 팬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