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문화부 기자
하루 판매량을 정해 놓고 돈가스와 맥주만 파는 가게. 식당 복판의 널찍한 직사각형 주방에 백발 요리사 4명이 젊은 보조를 한 명씩 데리고 띄엄띄엄 서 있었다. 첫 번째 요리사는 줄곧 고기만 잘라 손질했다. 두 번째 요리사는 연신 빵가루를 갈아내 넘겨받은 고깃덩이에 계란 반죽과 함께 묻혔다. 세 번째는 묵묵히 튀기고, 튀기고, 튀겼다. 네 번째의 몫은 양배추 썰기.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 제품처럼 돈가스 접시들이 척척 재단돼 나왔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같은 음식이라도 날마다 맛이 다르다. 주문이 접수된 뒤 상에 올라 삼켜질 때까지 허다한 변수가 작용한다. 주방장의 컨디션, 날씨, 아침에 들어온 재료의 선도, 그릇 설거지 상태, 손님의 신체 리듬과 심리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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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산해진미만 맛난 게 아니다. 달걀 하나를 삶아도 맛있게 또는 맛없게 삶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레시피는 하나다. 손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거기서 모든 게 결정 난다.
서울 세종로 부근에는 ‘맛집’으로 알려진 음식점이 꽤 많다. 하지만 그곳 직장인들은 점심시간마다 고민한다. 뭐 좀 맛있는 거 없을까? 답은 거의 늘 “그냥 대충 때우자”다. 맛집 동네에 왜 맛있는 점심은 드문 걸까. 이 동네에는 ‘맛없는 맛집’을 보호하는 두 가지 방어막이 있다.
첫 번째 방어막은 손님의 체면이다. 고깃집이든 레스토랑이든 세종로 근처 식당에서는 “처음 뵙습니다”라며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일 때문에 만난 자리에서 “맛이 형편없는데 주방장 좀 봅시다”라고 할 사람은 없다. “가격에 비해 음식이 너무 부실하다”고 항의하기도 어렵다. 맛없는 음식을 비싸게 내놓아도 군말 없이 계산하고 나가는 손님이 대부분이므로 음식을 굳이 맛있게 만들 필요가 없다.
두 번째는 ‘레밍 효과’다. 북유럽에 무리 지어 서식하는 들쥐 레밍은 눈이 어두워 바로 앞 동료 꽁무니만 따라다닌다. 그러다 보니 선두의 실수로 호수나 바다에 줄줄이 뛰어들어 ‘집단 자살’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가끔 벌어진다. 점심때마다 스무 명쯤 길게 줄을 늘어서는 파스타 집. 재료와 솜씨에 어울리지 않는 가격이라 두 번 가 보고 다시는 찾지 않는다. 하지만 가게 앞의 줄은 여전하다. 소문이 자자하다기에 찾아왔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솔직하게 “헛소문이었구나. 맛없네”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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