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국의 무예이야기- 조선 군사들의 공놀이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제공
무관이 되려면 익혀야 하는 격구(擊毬)
격구는 쉽게 말하자면 말을 타고 펼치는 공놀이의 일종이다. 끝부분이 숟가락처럼 생긴 채(杖匙·장시)로 공을 퍼 담아 골대에 집어넣는 기병용 특수 무예 수련법이자 조선시대 최고의 스포츠였다. 서양에도 격구와 비슷한 폴로(Polo)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공놀이가 최고의 무예 수련법으로 꼽혔을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기병 무예(마상무예)는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기사(騎射)와 창으로 적을 공격하는 기창(騎槍)이었다. 문제는 이런 무예를 이용해 펼치는 전투는 한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부대가 함께 싸우는 ‘단체전’이란 것이었다. 혼자서만 아무리 잘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편을 갈라 말을 타고 우열을 가리는 격구는 승마 기술과 기병들의 팀플레이 훈련에 가장 좋은 도구였다.
게다가 조선시대, 특히 건국 초기에는 기병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첫 번째로 직면한 국방 문제는 바로 북방 여진족과의 마찰이었다. 여진족들은 기동력이 우수한 기병으로 쉼 없이 조선의 국경을 침범하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에 대해 조선이 할 수 있는 최우선의 대응책은 강한 기병을 양성하는 것이었고, 기병의 훈련에 가장 도움이 되는 훈련법이 바로 격구였다.
서양의 폴로보다 화려한 기술
격구에는 크게 두 가지 경기 방식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한 명이 말을 타고 일정한 코스를 따라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공을 구문(골대)에 넣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여러 사람이 팀을 나눠 공을 서로 빼앗아 가며 구문에 넣는 방식이었다.
태조 이성계의 기마술과 격구 실력은 요즘으로 치면 한국이 낳은 세계적 축구 스타 박지성과 맞먹을 정도였던 것 같다. 심지어 조선의 개국을 찬양하는 노래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도 태조 이성계의 놀라운 격구 실력이 담겨 있을 정도다.
우리의 격구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우리에게 상표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폴로’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영국에는 지금도 프로 폴로 선수가 있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프로팀들이 대항전을 펼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격구는 서양의 폴로보다 더 화려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폴로의 채는 망치 모양으로 생겨서 주로 공을 때리는 용도로 쓴다. 그래서 한 번 친 공을 쫓아가서 다시 치는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반면 격구는 공을 치는 것은 물론이고 끝이 숟가락처럼 생긴 장시에 공을 퍼 담아 이리저리 휘두를 수도 있다. 필자는 격구 경기를 직접 하고 있는데, 격구는 단 10분 동안만 해도 온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고 화려한 자세로 가득하다.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