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경제부장
저는 생전에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물론 기업에는 이윤도 중요하지만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정부에 로비를 하거나 보호를 받아서 이윤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정치에 관심을 둘 일이 뭐 있었겠습니까. 절반의 확률인 당신의 재선 여부도 못 맞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저는 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애플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대해 ‘삼성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수입을 금지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당신이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애플을 배려하는 당신의 따뜻한 마음에 대해서는, ‘일단’ 깊이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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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를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부릅니다. PC 시장을 창조했고, 처음으로 GUI를 실용화했으며, 맥-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제품을 줄줄이 내놓았으니 그런 별명이 붙을 만도 하지요.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라고 해서 남의 아이디어를 전혀 훔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윈도는 맥의 GUI를 모방한 것”이라고 제가 게이츠에게 빈축을 줬더니, 그가 이렇게 되받더군요. “우리 둘에겐 제록스라는 부유한 이웃이 있었는데, 내가 텔레비전을 훔치려고 침입했다가 당신이 이미 훔쳐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죠.” 게이츠의 지적처럼 맥의 GUI는 제록스의 제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습니다. 저도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문제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MS가 맥을 흉내 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제대로 훔치지 못해서, 즉 형편없는 삼류 제품을 만들어서 화가 났던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사안의 핵심은 특허가 아니라 ‘위대한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애플과 삼성 간의 지루한 특허공방이 계속되는 동안, 혁신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두 회사가 모두 후속모델을 줄줄이 내놓고 있지만 혁신이나 위대함과는 거리가 먼 범작(凡作)뿐입니다. 제가 시작은 했지만 제 사후(死後)에 벌어지고 있는 특허전쟁은 올바른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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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갈망하고, 바보처럼 도전하는(Stay hungry, stay foolish)’ 정신을 잃어버린 애플은 더이상 애플이 아니랍니다.
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