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문화부 차장
글로벌 시장에서 한드의 위상은 B급 상품이다. 강명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장이 중국 시장을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학력과 소득이 높은 사람은 미국과 일본 드라마, 중간쯤 되는 시청자는 중국과 홍콩 드라마, 낮은 이들이 한국과 대만 드라마를 좋아한다. 중국인들도 “막장이야 막장(狗血아狗血)”이라고 욕하면서 한드를 본단다.
유럽 시장을 연구한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너무 완벽한 미드와 달리 한드는 감정이입이 쉽도록 비어 있는 콘텐츠여서 인기”라고 분석했다. 유럽 팬들은 한드의 상투적인 설정을 찾아내 ‘한국 드라마의 십계명’을 만든다. 남주인공은 예외 없이 부자고 성격이 나쁘다, 주인공이 죽는 경우 꼭 암으로 죽는다, 어떤 복잡한 문제라도 한번 엉겨서 싸우고 나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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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실패의 징후는 2004년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성공한 후부터 감지됐음에도 정부는 드라마의 거장이 죽고서야 대책을 내놨다. 표준계약서를 제정해 출연료 미지급 문제, 쪽대본 제작 관행, 수익배분을 둘러싼 제작사와 방송사의 갈등을 해결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핵심이 빠졌다.
제작비 급등의 직접적 원인인 배우와 작가의 몸값에 대한 언급이 없다. 10년 전 이영애가 ‘대장금’에서 받은 회당 출연료가 600만 원인데 지금은 10배를 줘야 한다. 전체 제작비에서 스타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이나 일본의 5배다. 특A급 작가의 회당 원고료도 2000년 1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정부는 연기자 및 작가 협회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도 하는데 출연료 합리화는 왜 못하나.
정부의 발표에는 드라마 제작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대책도 빠져 있다. 미국 드라마 제작자들은 일정표와 예산서 작성 소프트웨어로 제작 전반을 관리한다. 배우별로 언제 출연하고, 어떤 장비가 얼마나 사용되는지, 일별 촬영 분량과 연기된 분량은 얼마인지가 통계로 나온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에서 일정 및 예산 관리를 여전히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는 건 믿기 힘든 얘기다. 제작 현장에서 일정과 예산 관리에 쓸 만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도 정부가 할 만한 일이다. 30일 발표한 표준계약서 제정에서 그친다면 ‘드라마는 대박 나고, 제작사는 쪽박 찬다’는 내용이 해외 팬들의 ‘한드 십계명’에 추가될지도 모른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