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박봉우(1934∼1990)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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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상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에 나온 김혜련의 ’눈산’
그처럼 더웠던 날의 기억에 대한 기록인 ‘휴전선’은 박봉우 시인의 데뷔작(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이자 대표작이다. 국토의 정맥이 끊어진 3년 뒤 발표한 시가 이제 정전 60주년을 바라본다. 한 해 두 해 십 년 이십 년 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린 세월 동안 그의 시는 6·25와 분단 문학을 이야기할 때면 빠질 수 없는 작품으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산과 바다까지 등 돌린 현실도 달라지는 것 없이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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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전협정 60주년 행사가 나라 안팎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계도 분단 현실을 가장 가깝게 확인할 수 있는 비무장지대와 서해 최북단 섬을 찾아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그중 하나 ‘백령도-525,600시간과의 인터뷰’란 전시 제목이 눈길을 붙잡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넘을 수 없는 문지방을 만든 지가 어언 52만5600시간!
그 환갑에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선 입만 열면 여전히 강조하는 단일민족이 대치국면을 이어 가고 있다. 언제 철이 드는가. 시인이 오래전에 말한 불안한 얼굴, 믿음이 없는 얼굴들이 오늘도 서로를 노려본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