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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꿈꾸는 정치인]‘진짜 정치’에 눈 떠가는 심상정

입력 | 2013-07-26 03:00:00

묵묵히 민심의 벽을 오른다… “진보적이되 더 정치적으로”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지역구(경기 고양 덕양갑) 주민들을 만날 때가 가장 즐겁고 편하다. 지역 민심과 소통도 소중하지만 ‘이웃집 아줌마 같다’는 덕담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실물로 보니 더 예쁘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며 웃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54)의 머릿속은 ‘정치(政治)’라는 말이 점령한 듯했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1시간 반 동안 만난 그의 입에서는 이 단어가 쉴 새 없이 나왔다. 재선 의원이자 지난해 대선에서 당의 대선후보를 지낸 중견 정치인이 이제야 정치를 발견한 듯했다.

심상정은 변혁, 혹은 혁명을 꿈꿨던 운동가 출신이다. 그러나 ‘진보’를 표방하며 만든 정당은 두 번의 큰 실패를 겪었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2008년 종북(從北) 논란 속에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왔고, 2011년 통합진보당이란 당명으로 어렵게 재결합했지만 지난해 총선 비례대표 부정경선을 둘러싼 폭력 사태를 거치며 다시 쪼개졌다. 심상정은 이때마다 중심에 있었다.

―두 번의 실패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운동의 논리와 정치의 문법은 다르다는 것, 선의나 도덕주의만으로는 정치적 책임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진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과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실주의 정치세력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적이되 더 철저히 정치적이어야 한다.”

―흔히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들 하는데….

“진보가 분열을 거듭한 것은 정치적으로 미숙했기 때문이다. 진보는 민심을 읽고 소통해서 신뢰받는 법을 몰랐다. 분열은 진보의 운명이 아니다.”

―2010년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 이어 지난해 대선 때 중도사퇴했다. 정치적으로 미숙한 탓인가.

“개인의 미숙함보다는 진보정치의 구조적 한계에 기인한 측면도 많다. 그러나 같은 상황은 절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제 정치인생에서 미래를 내주는 양보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심상정은 진보정치의 구조적 한계의 원인을 분단과 거대 양당체제에서 찾았다. 분단 상황은 진보정당을 사상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게 만들었다. 그러나 양당체제가 끼치는 악영향이 더욱 크다고 했다. 다수당이 소수당에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는 패권적 정치구조가 현재 한국의 정치현실이라는 것이다. 대선에서의 결선투표제 도입, 원내교섭단체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진보는 거대 양당체제가 만들어 놓은 메인스타디움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돼 있다. 국민도 정치권에서 공정한 경쟁질서를 만들어 게임을 하라고 요구한다. 다수당이 소수당에 단일화를 강요하는 방식은 안 된다는 것을 지난 대선에서 국민은 뼈저리게 느꼈다고 본다. 그것이 새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새 정치의 주역으로 심상정이 아닌 무소속 안철수 의원을 꼽는데….

“그런 점에서 국민은 안 의원에게 엄청난 권력을 줬다. 제도화된 권력은 약하지만 발언권이란 측면에서 안 의원만큼 주목받는 사람이 어디 있나.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내는 데 온몸을 던지라고 준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명을 어떻게 실천할지 지켜보고 있다.”

심상정과 안철수는 가깝다. 연대설도 끊이지 않는다. 심 원내대표는 “그저 차 한 잔 마셨을 뿐”이라고 했지만 양당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결선투표제를 이야기하며 제3의 대안세력이 필요하다는 데 두 사람은 동의하고 있다. 게다가 심상정은 ‘연합정치’를 주장했다.

―연합정치가 당장 10월 재·보궐선거에서 구현될 수 있나.

“정치라는 것은 권력의 추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정치개혁의 과제는 저와 진보정당이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협력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최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도 만났다는데….

“저희가 상대적으로 세는 약하지만 민주당도, 안 의원도 다 급하긴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정치개혁을 위한 노력은 정당의 틀을 뛰어넘어서 의지를 모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 의원은 잘하고 있다고 보나.

“안 의원은 국회 들어온 지 3개월 됐는데 벽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10년 넘게 벽을 느끼고 있다. 안 의원은 이미 산 중턱에서 바라본 벽이어서 저처럼 밑바닥부터 실감해온 벽과는 차이가 크다.”

심상정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듯하다. 진보가 지향했던 새 정치의 열망은 안 의원에게 쏠려 있고, 정의당이 과거 주창한 보편적 복지, 무상급식 같은 정책은 거대 정당이 냉큼 가져가 버렸다.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했을 때 한국사회 좌표를 바꿔가는 ‘거대한 소수’를 자임했다. 그러나 분단과 양당체제라는 구조적 한계와 더불어 진보의 정치적 미숙함 때문에 안철수 현상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진보의 실패가 안철수라는 이름을 불러냈다. 뼈아프게 성찰하고 있다.”

현재 정의당의 힘으로는 집권하기 어렵다는 것을 심상정은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변화를 주도할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해서 집권에 대한 욕망이 수그러든 것은 아니다. 선의를 가지고 옳은 것에 집착하고 신념을 지키는 데 주력하는 것도 좋지만 권력을 획득할 수 있어야 그만큼의 책임도 질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권력 없는 책임은 가능하지 않다. 권력과 거리가 먼 정치세력은 정치세력으로서 의미가 없다. 권력을 잡아야 뜻을 펼칠 수 있다.”

―여성 대통령이 한 분 나왔는데 또 다른 여성 대통령을 국민이 허락할까.

“왜 그렇게 생각을 하나. 왜?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이지만 생활정치와 수평적 리더십을 핵심으로 하는 여성 정치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여성 정치 본연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는 앞으로 더 높아지지 않겠나.”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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