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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윤상호]미래전쟁 바꿀 꿈의 항공기

입력 | 2013-07-24 03:00:00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몰래 들여다볼 수 없을까.”

냉전의 서슬이 시퍼렇던 1950년대 초 미국은 극비리에 소련을 염탐할 수 있는 정찰기 개발에 착수했다. 첩보위성이 없던 시절 적국 영토 깊숙한 곳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는 정찰기는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꿀 ‘꿈의 무기’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록히드마틴의 특수항공기 개발팀인 ‘스컹크 워크스(Skunk Works)’가 신형 정찰기 개발에 매달렸다. 그 결과 1955년 당시로선 최고의 항공기술이 집약된 U-2 정찰기가 탄생했다. 미국은 이 정찰기를 기상관측장비로 위장해 소련 영공에 침투시켜 핵미사일 기지와 격납고 등 특급기밀시설을 촬영했다. 얼마 뒤 소련은 U-2기의 존재를 눈치 챘지만 2만 m 이상의 고고도(高高度)를 비행하는 ‘괴물 정찰기’를 추적하거나 요격할 수단이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1960년 5월 소련 영공을 정찰하던 U-2기 1대가 신형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되고 미국 CIA 소속 조종사가 생포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비밀 정찰기의 정체가 탄로 나자 온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임기 내 U-2기의 비행을 중단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유엔에서 구두를 벗어 단상을 내려치며 미국을 맹렬히 비난했다. U-2기는 항법과 정찰장비를 개량하고, 동체를 개조하면서 반세기 넘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한미군에 배치된 U-2기는 대북 핵심감시전력으로 지금도 한반도 상공을 누비고 있다.

U-2기의 추락 이후 미국은 1965년 더 강력하고 은밀한 SR-71 블랙버드(Black Bird)라는 초음속 정찰기를 개발했다. 오징어 모양의 SR-71은 사상 최초로 음속의 3배 이상을 돌파한 정찰기였다. U-2기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시속 3600km로 날아가는 ‘검은 괴물새’는 인류가 개발한 가장 빠른 정찰기이자 몇 세대 앞선 첨단항공기술의 결정체였다.

SR-71은 1990년대 초 퇴역 때까지 베트남전에 투입됐고, 일본 오키나와 기지에도 배치돼 북한과 소련 영공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1968년 1월 미국 해군의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나포된 사건을 가장 먼저 확인한 것도 SR-71이었다.

이어 1980년대 초에 개발된 F-117 스텔스 전폭기는 ‘보이지 않는 항공기’ 시대를 열었다.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F-117은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에 실전 투입될 때까지 그 모습과 성능이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에도 출격해 가공할 위력을 보여준 F-117은 대북억지전력으로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배치됐다. 2007년 말 F-117의 마지막 비행을 한 마이클 드리스콜 대위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김정일 정권이 통치하는 북한 상공을 맘껏 휘젓고 다닌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올해 3월 실시된 키리졸브(KR) 한미 연합군사연습엔 F-117의 ‘후예’인 B-2 스텔스 폭격기와 F-22 스텔스 전투기가 참가했다. 이 항공기들은 정밀유도폭탄은 물론이고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적국에 은밀히 침투할 수 있다. 적 지휘부와 주요 표적을 쥐도 새도 모르게 초토화할 수 있는 두 항공기의 무력시위는 적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북한이 두 항공기의 한반도 배치를 ‘핵도발’이라고 강력 비난한 것도 가공할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몇 년 뒤엔 인공지능 로봇이 조종하는 무인기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항해 중인 항공모함에 처음으로 X-47B로 명명된 드론(drone·무인폭격기)의 착륙 실험에 성공했다. 이착륙 등 비행 전 과정을 지상요원이 원격 조종하는 기존 무인기와 달리 X-47B는 혼자 220여 km를 날아 항모 갑판에 스스로 내려앉았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등장했던 ‘자율 무인기’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아울러 미국과 유럽의 항공 선진국들은 무인 우주왕복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첨단 우주항공 전력들이 실전 배치되면 인류는 또 한 번 전쟁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항공기가 극비리에 개발되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 우리의 머리 위를 날아다닐지도….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