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경제부
로비를 한 건 경기은행뿐이 아니었다. 충청 대동 동남 동화 등 퇴출 은행 대부분이 지방에 본사를 둔 곳들이라 해당 지역 출신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목숨 건 로비’ ‘실세에 줄 대고 지역정서 내세우고’… 당시 신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제목들이다. 외환위기라는 유례없는 국가 대란 앞에서도 부실을 감추기 위한 로비는 이어졌다.
15일 예금보험공사 매각 공고를 통해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의 ‘1호 매물’로 나온 경남·광주은행과 관련해서 금융계가 어수선하다.
금융 당국은 “시장에서 관심이 큰 순서대로 매물을 내놨다”고 말한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순서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호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역정서가 강한 만큼 자칫 인수전이 정치적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우려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원칙에 따라 처리해도 뒷말이 나오기 십상인 ‘민영화 작업’에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들다.
외환은행 매각 업무를 맡았다가 곤욕을 치른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게 빗댄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책임질 게 두려워 정책 결정을 꺼리는 공무원의 보신주의를 뜻한다. 이런 말이 생길 정도로 은행 매각은 건드리기 쉽지 않은 문제다. 잘 팔면 특혜 시비, 못 팔면 의지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여기에 정치적 로비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출범 첫해 민영화에 나선 것은 그나마 이런 압력을 이겨낼 힘이 있는 때가 지금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보그룹 불법 대출,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금융이 정치에 휘둘렸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공적자금 12조 원이 들어간 우리금융을 ‘정치 논리’에 따라 파는 건 국민에 대한 배임(背任)이 될 수 있다.
이상훈 경제부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