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소년 살해혐의 무죄평결… 인종차별이냐 정당방위냐 배심원 6명중 흑인 1명도 없어… 경찰, 소요사태 우려 “시위 자제를”
13일(현지 시간) 플로리다 주 순회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 6명은 17시간에 가까운 심리 끝에 2급 살인혐의로 기소된 지역 자경단원 지머먼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법원도 이런 평결을 확인하는 판결을 전하며 지머먼의 석방을 선언했다.
평결이 내려진 순간에도 무표정했던 지머먼은 재판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엷은 미소를 지었다. 흑인의 위협에 대비해 방탄조끼를 입고 재판에 나왔던 지머먼은 곧바로 법정을 떠났다.
특히 전원 여성으로 이뤄진 배심원단 6명 중 5명은 백인, 1명은 히스패닉이어서 인종차별 논란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배심원들은 평결 직후 단 한명도 공개 기자회견에 나서지 않았다.
이날 하루 종일 법률전문가들을 불러 평결 상황을 시시각각 전한 CNN 등 미 언론은 무죄가 선고되자 긴급 속보로 보도했다. 주요 신문들도 모두 1면에 대서특필하며 이번 사태가 인종관계에 몰고 올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사건의 파문은 음료수와 캔디를 사들고 귀가하던 17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이 지난해 2월 플로리다 주 샌퍼드 주택가에서 지머먼이 쏜 총알이 심장을 관통해 숨지면서 일어났다.
그러나 ‘지머먼이 범죄전력이 없는 마틴을 근거 없이 범죄자로 의심해 추격했고 무장하지 않은 그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는 흑인들의 반발 시위가 뉴욕 등으로 확산되자 경찰은 재조사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해 4월 지머먼을 2급 살인협의로 기소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내가 아들이 있었다면 트레이번 같았을 것”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사건 당시 마틴이 입었던 검은 후드티와 손에 들었던 캔디는 무고하게 살해된 10대 흑인 소년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지난달 시작된 재판에서 플로리다 최고 변호사들로 꾸려진 지머먼 변호인단은 마틴이 지머먼을 쓰러뜨리고 공격을 가해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지머먼이 격투 과정에서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은 사진이 공개되고 지머먼이 오히려 방어 상태였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오면서 재판은 지머먼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 검찰은 지머먼이 경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틴을 쫓아간 점을 집중 부각했으나 유죄를 입증하는 데는 실패했다.
판결 때 법원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마틴의 가족은 트위터를 통해 “판결에 실망했지만 평화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흑인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미국 재판 시스템이 다시 한번 정의 실현에 실패했지만 또 다른 비극을 부르는 폭력은 피해야 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미국 최대 흑인인권단체 NAACP는 “이번 판결에 격분했다”며 법무부가 직접 민권 침해 혐의로 지머먼을 조사해 기소할 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