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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려면… 내부고발자의 조언

입력 | 2013-07-13 03:00:00

[토요판 커버스토리]‘정의의 휘슬’ 내부고발자 ‘보복의 사슬’
성실한 자기관리→동료 내편 만들고→패 차근차근 까라




내부고발자에서 부패신고 처리 파수꾼으로 변신한 국민권익위원회 김영수 조사관. 김 조사관은 “사회적 인정을 받는 내부고발자들이 많이 나와 나 혼자 운 좋은 사람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군에서 미운털이 박혀 쫓겨나게 된 장교가 국가유공자 훈장을 받는 ‘사건’이 2011년 2월에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주요 부패 신고자를 선정해 치하하는 국민신문고대상 시상식에서였다.

전역을 앞둔 해군소령 김영수 씨(45·해사 45기)는 최고상인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전사에 준하는 공을 세워야 가능한 국가유공자 자격까지 부여돼 군인으로선 더없는 영예를 안았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새까만 피부, 각진 턱. 전형적인 군인 용모를 한 김 씨는 시상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감격의 눈물’은 아니었다. 그날 김 씨의 하객은 한 명도 없었다. 부인과 두 자녀마저 “당장 생계가 막막한데 상이 무슨 소용이냐”며 오지 않았다. 해군 제복을 입은 키 185cm의 거구는 시상식 내내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다른 수상자들은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축하객과 기념사진을 찍다가 김 씨를 안타깝게 쳐다봤다. 1991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0년간 입어온 남색 제복이 김 씨는 더이상 자랑스럽지 않았다.

김 씨는 2006년 계룡대(육해공군 통합기지) 근무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군납비리를 폭로했다. 당시 간부들은 사무용 가구와 전자제품을 정상가보다 일부러 비싸게 사들인 뒤 나중에 차액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수억 원을 빼돌렸다.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김 씨의 제보를 토대로 조사에 착수해 9억4000만 원의 국고가 낭비된 사실을 확인했다. 권익위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조직 내 불의와 투쟁한 용기를 높이 사 5년 뒤 김 씨를 수상자로 정했다.

하지만 김 씨는 내부고발로 혹독한 보복을 받아야만 했다. 동기 가운데 선두그룹을 달리던 그였지만 근무평정에서 최하등급을 받았다. 보급 주특기와 전혀 무관한 국군체육부대로 발령받아 사관학교 후배를 상관으로 모시며 근무했다.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는 이유로 징계도 받았다. 나중에는 직제에도 없고 책상도 없는 보직을 받아 부대 내 떠돌이처럼 지내야 했다. 김 씨는 비리 연루자들을 보호하는 군 조직과 5년간 싸우며 일부 간부의 진급비리 단서까지 확보했지만 무마 압력에 시달리며 절망했다. 해사 생도 땐 축구부 주장, 임관 후엔 동기회장을 하며 동료들의 구심점이었던 김 씨는 권익위 훈장을 받은 지 넉 달 만인 2011년 6월 해군을 떠났다.

김 씨는 공공기관 감사실에 취업하려 했지만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권익위에서 받은 국가유공훈장이 희망의 씨앗이 됐다. 그의 부패고발 경력과 ‘10% 가산점’에 힘입어 전역 한 달 뒤 권익위에 6급 조사관으로 채용된 것이다. 내부고발 이후 성공적으로 새 삶을 시작한 희귀 사례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권익위 사무실에서 김 씨를 만나 내부고발자로 살아남는 법에 대해 물었다.

―왜 굳이 불이익을 감수하며 내부고발을 했나.

“계룡대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뒤 상관들이 ‘그동안 다 이렇게 해왔다’며 불법을 강요했다. 나는 범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군인은 생명을 걸고 일한다. 군내에서 헬기 추락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공식 조사 결과는 조종사 과실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헬기를 제대로 뜯어보지 않고 볼펜으로만 정비하는 ‘페이퍼 정비’의 문제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큰 사고가 한둘이 아니다. 돈 몇 푼 먹겠다고 그 20대 팔팔한 청춘을 죽인다는 게 정말 나쁘지 않나. 정치나 이념엔 관심 없지만 생명을 담보로 원칙을 저버리는 군인을 가만 놔두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내부고발자로 사는 고단함을 줄일 방법은….

“내부고발에 생활을 저당 잡히면 안 된다. 투쟁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 업무, 취미 같은 삶의 다른 부분들에도 충실해야 한다. 스스로 편안해져야만 싸울 수 있다. 내가 편한 사람이 돼야 주변에서 부담을 덜 느끼고 나를 도와줄 수 있다. 심적 동요가 없을 때 조직 안에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도 보인다. 내부고발은 분노와 억울함을 표출하는 게 아니고 조직의 가치와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그게 말처럼 쉽나.

“내부고발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피해의식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가 있어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 친한 친구도 세 번 이상 안 만나 준다. 찡그린 사람과 대면하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나 스스로 부정적이 되면 사회는 나를 더 부정적으로 본다. 고립을 자초하는 셈이다. 나도 군에서 보직 못 받고 몇 달 동안 책상 의자 안 줄 때 자살하고 싶었지만 그런 불이익은 승리로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부고발은 주변을 사랑하고 내 조직을 사랑하고 사회를 사랑해서 하는 것 아닌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어떻게 감당하나.

“비리 관련자나 조직 내 기득권층엔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일반 구성원들로부턴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구성원은 비리에 반대하고 정의를 옹호한다. 나도 동료에게 왕따를 당했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직접적으로는 못 도와줘도 간접적인 응원을 받을 수 있다. 또 분노를 섣불리 드러내기보단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치밀하게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비리를 폭로하려 해도 나 홀로 가진 정보로는 한계가 있다. 내부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증거를 축적할 수 있다. 조직은 치부를 공격받을 때 무섭게 단결하기 때문에 등을 지는 순간 더이상 자료 접근이 안 된다. 그러면 그토록 밝히려 했던 부조리는 묻히고 만다.”

―지혜롭게 폭로하려면….

“패를 함부로 까면 안 된다. 부조리와 억울함을 단시간에 입증하려 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내부고발이 제기되면 어떤 조직이든 여론을 호도하며 역공을 해온다. 무턱대고 패를 다 까면 거기엔 부족한 게 있기 마련이고 상대는 그 약점을 파고든다. 단계별 대처방안을 세워두고 차근차근 패를 까야 한다. 나도 군납비리를 제보하자 해군에서 “진급이 안 돼 앙심을 품고 허위 사실을 퍼뜨린다”고 공격해왔다.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아예 고발하기 전에 진급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진급 필수요건인 신체검사를 받지 않았다. 한 단계 한 단계 증거를 갖고 반박하면 외부에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다 안다. 상대는 옳든 그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데 내부고발자가 전략이 없다면 승산이 없다.”

―조직은 늘 내부고발자의 허물을 들춰내 음해로 몰아가는데….

“내부고발을 결심했다면 자신이 행했던 잘못을 먼저 공개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진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싸우다 보면 어차피 자신의 허물도 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당당해야 동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근무나 자기 관리에도 철저해야 한다. 근무를 게을리 하면 조직에 반격의 빌미를 주고 동료들에게서도 멀어진다. 다만 우리 사회가 제보 의도보다는 제보 내용의 사실 여부에 더욱 초점을 맞출 필요는 있다. 최근 원전비리를 봐도 누군가 나쁜 의도를 갖고서라도 미리 시험성적서 조작을 폭로했다면 적어도 지금 전력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제보자에게 악의가 있었다면 사후에 처벌해도 된다. 조직은 제보자의 인성과 의도를 문제 삼겠지만 사회는 사실관계 규명을 우선해야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내부고발자들과 자주 상담하나.

“비공식적인 상담 요청이 많다. 나는 일단 이렇게 물어본다. ‘모아 놓은 돈 많아요?’ ‘연금 받을 수 있어요?’ ‘조건 안 되면 하지 마요.’(웃음) 대책 없이 싸우다간 자기 것을 다 잃기 때문에 안 물어볼 수가 없다. 그러면서 어떤 자료와 정보가 있는지 모아보고 어디부터 깰지 함께 전략을 세운다. 제보자들 중에는 근거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감정적으로 격앙돼 있는 분이 적지 않다. 그럴 땐 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유력한 단서를 확보할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한다. 사고를 일단 쳐놓고 수습하기보단 사전에 유경험자나 전문가들과 충분히 상의하는 게 좋다.”

김 씨는 현재 권익위에서 2년째 국방보훈 관련 민원 조사 업무를 하고 있다. 내부고발자로 5년간 투쟁하며 국방 관련 비리를 연구했고 지금은 업무를 통해 유사한 부패 사례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군에 있을 땐 윗선 견제에 눌려 미처 다 파헤치지 못한 군의 총체적 비리를 밝혀내는 게 김 씨의 목표다. 그는 권익위에 둥지를 틀면서 국가가 정의를 지키려 노력한다는 예전의 신뢰를 회복하게 됐다. “군 후배들이 요즘 저에게 ‘선배처럼 살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다른 공익신고자들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해요.”

김 씨가 단지 운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면,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화답하지 않는 사회라면 불의는 앞으로도 계속 승리할 것이다.

신광영 기자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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