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초겨울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와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다. 함께한 사람들 모두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야구와 넥센에 대한 여러 말을 나눴다. 지금도 그 날, 그 시간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얼마 전 이 대표가 한 말 때문이다. “2013년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더 나아가 우승에도 도전하는 해로 생각하고 있다.”
2010년 넥센은 3할대 승률로 7위에 그쳤다. 그러나 이 대표는 불과 3년 뒤에 4강을 넘어 우승까지 꿈꾸고 있었다. 당시 넥센은 구단 생존을 위해 주요 선수들을 타 구단에 현금 트레이드한 영향으로 전력 약화가 심각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당시 ‘아니 안 그래도 선수들이 많이 떠나서 계속 내리막인데, 3년 안에 우승 도전이라니. 매년 수십억 원을 투입해 정상급 FA(프리에이전트)를 모두 영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며 냉소적 시각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1년여가 흐른 뒤 이 대표는 LG로 떠나보냈던 이택근에게 4년 50억원이라는 파격적 금액을 안기며 FA 계약을 했다. 연봉만 따져도 당시로선 두산 김동주와 공동 1위에 해당하는 대형계약이었다. 그 무렵 여러 구단이 이택근을 탐냈지만, 홈런타자가 아닌 만큼 김동주에 버금가는 액수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신생팀 창단으로 FA 시장이 폭등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택근과의 계약을 통해 구단 프런트와 선수는 물론 팬들에게도 히어로즈가 더 이상은 비루한 구단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었다.
넥센이 한국시리즈 직행 확률이 50%에 이른다는 40승에 삼성과 함께 선착한 모습을 보며 2010년 초겨울 이 대표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 때 기자는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아니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 크게 비중 있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대표는 그 때도, 지금도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국내 모든 프로 종목을 통틀어 유일하게 팀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다. 현역 코치와 스카우트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2군과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꿰고 있기도 하다. 수차례 단행한 대형 트레이드도, 과감한 FA 영입도 오너 겸 최고경영자가 아니었으면 쉽지 않은 결정들이었다. 리더로서 명확하게 목표를 정한 뒤 그 과정상의 모든 책임과 비난을 감수할 수 있었던 힘이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물론 아직 시즌은 끝난 것이 아니다. 넥센이 올 가을 웃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프로야구를 포함해 국내 모든 프로스포츠가 결국 가야 할 길은 모기업의 홍보수단 또는 사회공헌용이 아니라 자생할 수 있는 진정한 프로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