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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무소유 시대]일본 저성장 풍속도

입력 | 2013-07-05 03:00:00

‘無가족사회’ ‘無緣사회’… 자식대행 서비스까지 인기




일본 도쿄 인근의 한 사찰 공동묘 앞에서 승려가 추모공양을 드리고 있다. 사진 출처 일본 ‘영대공양’ 종합포털사이트

2011년 일본에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엔딩 노트’ 열풍이 불었다. 60대 남자인 주인공은 40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뒤 위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그는 손녀들과 함께 놀아주기, 노모를 모시고 여행 가기 등 죽기 전에 할 일을 ‘엔딩 노트’에 적고 행한 뒤 가족들의 따뜻한 배웅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영화가 인기를 끈 이유는 내용이 주는 감동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세상과 작별하는 일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했다.

2010년 1월 NHK가 방송한 ‘무연(無緣)사회’에 따르면 가족 없이(또는 거의 연락을 끊은 채) 홀로 사망하는 무연고 시신이 연간 3만2000건에 달했다. 한국에서는 2010년 무연고 사망자가 636명이었다. 아사히신문도 “가족(家族) 사회가 막을 내리고 ‘고족(孤族)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2030년이 되면 독신 가구 비율이 40%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무연 사회’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유품처리 대행업’. 2002년 서비스를 시작한 일본 회사 ‘키퍼스’는 고인이 죽은 후 집 정리 청소뿐 아니라 유품 배송 및 처리 등 종합 서비스를 하고 있다. 2010년엔 한국에도 진출했다.

묘지 관리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영대(永代) 공양’(영원히 공양을 드리고 추모한다는 뜻) 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죽기 전에 봉안당이나 공동묘지와 계약해 자신의 사후를 자손이 아닌 남이 평생 관리해주는 것이다. 이사가 거의 없는 사찰에서 주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매달 또는 1년에 한 번 추모공양을 받을 수 있는데 현재 전국적으로 536개가 영업 중이며 공양 빈도에 따라 300만∼10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홀몸노인을 위한 ‘센서’ 서비스업도 있다. 현관문에 센서를 설치한 뒤 1주일이 넘도록 문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으면 업체 직원이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것이다. ‘죽은 뒤 아무도 시신을 찾으러 오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는 노인들의 신청이 많다고 한다. 여기에 자식을 대신해 은행 금융업무, 집 안의 각종 수리 등을 대신해주는 ‘효도 대행 서비스’도 인기이며 유료 전화인 ‘말벗 서비스’도 인기다. 10분에 1만 원을 받고 노인들에게 말벗이 되어주는 것이다.

홀몸노인이 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서서 노인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 사생활을 존중받으면서도 외로움을 줄일 수 있게 집과 공동주택을 자유롭게 오가게 하는 일종의 ‘진화된 노인정’ ‘어르신 셰어 하우스’가 그것. 예를 들어 일주일에 4일은 공동주택에서, 나머지 3일은 집에서 지내는 식이다.

한편 일본 내에서 부모나 형제자매끼리 근거리에 사는 ‘따로 또 같이 가족’이 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노무라종합연구소가 1997년과 2009년 일본인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도시 안에서 편도 1시간 이내 거리에 거주하는 가족 비중이 1997년 38%에서 2009년 47%까지 늘어났다. 반면에 당일 왕복이 불가능한 거리에 거주하는 가족은 1997년 19%에서 2009년 14%로 줄었다. 고독이 늘어나는 한편으로 관계에 대한 갈망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석주 노무라종합연구소 컨설턴트   
정리=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