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비리 담화때 ‘천인공노’ 표현 강조… 청사 돌며 창가쪽 전등 끄는 ‘절전맨’
정홍원 국무총리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장차관들에게 부채를 하나씩 돌렸다. 그는 전날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앞에서 열린 주민 자선장터에서 개당 4000원짜리 부채 70개를 샀다. 정 총리는 “이 부채를 사용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시라”고 했고 장차관들이 일제히 부채를 부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정 총리는 부채를 총리실 간부들에게도 선물했다. 부채를 받은 한 간부는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를 틀기도 눈치 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7일 대국민담화에서 ‘원전 비리와의 전쟁’을 공식 선포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그가 보여준 모습은 기존의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달랐다. 정부 내부에서는 전직(검사)을 거론하며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 같다’는 말이 나왔다.
앞서 지난달 31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선 원전 비리에 대해 ‘천인공노할 중대한 범죄”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총리 측 관계자는 “발표문 초안을 보고 강도가 약하다고 판단한 정 총리가 직접 ‘천인공노’라는 표현을 넣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정부 내 에너지 절약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국민에게 희생을 요청하려면 정부가 먼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 총리는 최근 집무실이나 공관에서 업무를 볼 때 아예 불을 켜지 않고 자연채광을 이용한다. 저녁엔 스탠드 하나만 켠다. 총리 측 관계자는 “간부들은 보고하러 갈 때도 와이셔츠 바람으로 간다”며 “정 총리가 최근 회의를 주재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상의를 벗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총무과는 매일 아침 청사를 돌며 창가 쪽 전등을 소등하는 것이 일과가 됐다. 햇빛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취지다. 직원들이 다시 켜는 것을 막기 위해 ‘절전’ 스티커도 붙였다. 총리 측 관계자는 “에어컨은 꿈도 못 꾸며 개인 선풍기 사용도 엄격히 금지했다”며 “오후 7시 이후 매 시각 건물 전체를 자동 소등하고 필요한 경우 개인용 스탠드를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고 설명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