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0일 월요일 맑음. 비포 더 돈. #61 Quadron ‘Day’(2010년)
재즈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 음악만 들으면 손가락이 12개쯤 있는 듯하다.
오뉴월 밭고랑 같은 이마 주름을 실룩대며 제시(이선 호크)가 욕을 퍼붓는 상대는 그 밭 위 언덕처럼 불룩하게 배 나온 중년의 셀린(쥘리 델피). 순정만화 주인공 같던 호크와 델피가 벌써 40대라니. 풋풋한 첫사랑, 아련한 옛사랑의 미래형이 고작 사실혼 관계의 견원지간이라고? 어젯밤 영화 ‘비포 미드나잇’을 보며 맥이 탁 풀렸다.
김수현 드라마식 부부싸움을 벌이다 튀어나온 제시의 말 중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될걸!”의 원어 대사는 “빌어먹을 장고 라인하르트라도 될 걸!”이다. 전편 ‘비포 선셋’에서 노래도 했던 델피는 실제로 2003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시리즈의 1편인 ‘비포 선라이즈’를 야한 영화인 줄 알고 봤던 1995년이 떠오른다. 학교 친구 두 명과 의기투합해 찾은 작은 비디오방. “야, 야한 거 보자, 야한 거!” 송중기 같은 피부 안에 들짐승을 키우던 이율배반적 동기 J가 집어든 비디오에 쓰여 있던 제목, ‘비포 선라이즈’. “야, 심지어 (여주인공도) 예뻐!”
어두컴컴한 방 안에 반쯤 드러누운 시커먼 남자 셋의 두근거림은 영화 시작 30분 만에 멎었다. “야, 이거 야한 거 맞아? 상열지사는 없고 뭐 이렇게 대사가 많아?” 영화 말미, 음침한 공원에서 키스하던 제시와 셀린을 비추던 화면이 아침 해로 넘어가며 ‘중략’의 묘가 발휘된 순간엔 순결한 내 입에서도 험한 말이 나올 뻔했으니….
‘낮이여/넌 날 밝게 해/따뜻하게 해… 넌 내 눈을 아프게 해.’(쿼드론 ‘데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