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당국회담 하자” 제의 → 南 “장관급 회담 열자” 맞제의… 긴박했던 현충일
현충일 추모사 90분 뒤 北 회담 제의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58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한 시간 반 뒤 북한은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제의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그러나 남북 간 견해차가 큰 의제들이 산적해 있는 데다 국제사회의 강한 요구를 받고 있는 비핵화 문제에서 북한의 실질적 자세 변화가 없다면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지속 가능성도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 긴박했던 하루
이후 청와대와 통일부, 외교부 등은 관계부처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민간 측만 상대하며 ‘통민봉관(通民封官)’을 시도하던 북한이 당국을 향해 태도를 바꾼 만큼 남북 관계 개선을 모색해볼 여지가 생겼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안보회의가 끝난 뒤인 오후 6시 20분, 정부는 후속 발표를 예고했고, 오후 7시 류 장관은 ‘12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을 제안했다. 북측 제의가 있은 지 7시간 만에 회담의 형태(장관급), 장소(서울)와 날짜(12일)를 구체적으로 정해 북한에 다시 제의한 것이다. 장관급 회담 준비를 위한 판문점 연락채널 재개 등 북측의 사전 조치까지 요구했다. 북한의 대화 제의를 계기로 남북 관계를 급진전시키겠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 “큰 틀에서 통 크게”
정부의 제의는 남북 관계의 큰 틀에서 한꺼번에 통 크게 다뤄 보자는 박 대통령의 뜻이 담겼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5·24 대북제재 조치의 해제를 비롯한 다양한 이슈가 대화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여러 가지 의제를 한꺼번에 던졌는데 정부가 옹색하게 하나씩 건드려서야 되겠느냐”며 “이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려면 최소 장관급은 되어야 진지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과 금강산, 이산가족 등 문제를 놓고 다양한 회담 시뮬레이션을 거치면서 북한과의 협상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는 준비가 다 돼 있다”며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고통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회담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화가 진전될 경우 가을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재개되고 남북 정상회담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고 있다.
○ 여전히 갈 길 먼 비핵화
남북 대화가 급진전될 가능성은 커졌지만 북한 문제의 핵심인 비핵화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날 남북회담을 제의하는 장문의 특별담화문을 내놓으면서 비핵화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핵개발을 강행하겠다는 기존의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남한을 핵 문제의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남북 대화가 곧바로 6자회담이나 북-미 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번 회담이 다른 다자 간 대화로 쉽게 연결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남북 교류나 협력, 대화 다 좋은데 결국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자 과제”라며 “이걸 무시하고 대화할 상황은 전혀 아니라는 점을 북한에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