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때 전사 김찬중 이병 60여년만에 딸과 재회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김찬중 이병의 유해. 김옥 할머니는 아버지 묘역을 사진으로 먼저 접하고 정부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묘비에는 ‘김 일등병’이라고 적혀 있지만 국방부 공식 기록에 김 씨는 ‘이병’으로 남아 있다. 유엔기념공원 제공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옥 할머니(70)의 아버지 김 이병은 “나라가 위급한데 나만 살 수 없다”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에 입대했다. 젊은 아내가 부둥켜안으며 말리고,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친구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을 떠나는 뒷모습이 김 할머니가 일곱 살 때 본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김찬중 이병의 유해. 김옥 할머니는 아버지 묘역을 사진으로 먼저 접하고 정부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묘비에는 ‘김 일등병’이라고 적혀 있지만 국방부 공식 기록에 김 씨는 ‘이병’으로 남아 있다. 유엔기념공원 제공
휴전 뒤 당시 국방부는 김 이병이 6·25전쟁에서 전사했다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만 모셨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숨졌는지 몰라 제사도 지내지 못했다. 할머니도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는 유해도 수습하지 못한 미안함이 더 커졌다. 8년 전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전사자 유해를 찾아주는 국방부 유해발굴사업에 신청했다. 오매불망 아버지 소식을 기다렸지만 매년 “아버지 유해를 찾지 못했다. 열심히 찾아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현충일을 앞둔 이달 초 할머니는 아버지의 유해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가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기념공원에 안장된 카투사의 유가족을 초청하려고 수소문하던 중 할머니 연락처를 찾은 것. 육군으로 입대한 줄 알았던 아버지는 미2사단 소속 카투사로 입대해 1950년 9월 낙동강 전투 때 전사한 뒤 이곳에 안장돼 있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부산에 모셔놓고 60년 동안 왜 안 가르쳐 줬느냐”며 오열했다. 할머니뿐 아니라 카투사 고 반봉영 씨의 아들 반종수 씨(75)도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만 모셔왔던 아버지가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충일인 6일 김 할머니는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60여 년 만에 첫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