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일본이나 미국에서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자연스러운 존재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5관왕의 신화를 쓴 에릭 하이든은 미국 스탠퍼드대 의학박사 출신의 의사다. 스탠퍼드대에 입학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학업과 골프를 병행하기 어려워 중퇴했다. 우리의 경우 운동만 잘하면 장학금을 주고 모셔가 알아서 졸업까지 시켜주니 우즈처럼 중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의 길을 선택한 이상 학업은 뒷전이었던 우리 현실에서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부러운 대상이었을 법하다. 그래서였을까. 대한야구협회는 2011년에 고교야구에 주말리그를 도입했다.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훈련은 방과 후에, 경기는 주말이나 방학에 하게 했다. 그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올해로 3년째다. 시행 첫해 1학년이었던 학생이 졸업반인 3학년이 됐다. 제도의 취지대로 이 선수들은 학업에도 충실했을까.
취지는 좋았다. 프로에 입단하는 고3 선수들이 전체의 10% 안팎에 불과한 현실에서 이들에게 야구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할 기반을 마련해 주겠다는 데는 반대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방법이 틀렸다. 중학교 때까지 야구만 한 학생들이 고교 수업을 따라갈 리 없다. 또래에서 ‘야구도사’로 통해도 프로구단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인데 책이 눈에 들어올 리도 없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고교야구에 앞서 초등야구부터 공부하는 선수로 키워야 한다. 운동하는 학생들을 억지로 수업에 참가하게 하는 것보다는 체육과 담을 쌓고 사는 일반 학생들에게 스포츠 활동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더 절실해 보인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