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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기타]부처의 고행-예수의 십자가, 인간의 악행 온몸으로 고발

입력 | 2013-05-18 03:00:00

◇붓다와 희생양/정일권 지음/383쪽·1만7000원/SFC




영국의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사상가를 둘로 분류했다. 다양한 비밀을 아는 여우형과 단 하나의 위대한 비밀을 파고드는 고슴도치형으로. 20세기 후반 프랑스 사상가의 대부분이 여우지만 르네 지라르만큼은 고슴도치다.

지라르는 문학비평가로서 수많은 신화를 분석하다가 예수신화의 독특함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신화가 희생양(왕따)에 대한 집단폭력을 은폐하는데, 유독 예수신화만은 그 핏빛 희생제의의 부당함을 고발한다는 발견. 예수가 사탄의 길이라고 맹비난한 것은 타자의 욕망을 경쟁적으로 모방하다가 생긴 집단적 스트레스를 무고한 희생양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며,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아들인 것은 스스로 희생양이 됨으로써 그 부당함을 온몸으로 고발하기 위한 것이라는 통찰이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는 지라르 이론을 열쇠 삼아 다양한 종교 속에 은폐돼 있는 폭력적 기원을 추적하는 학제 간 연구를 펼쳤다. 지라르 이론에 입각한 불교사상 분석으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초기불교에 감춰진 희생양 메커니즘 분석을 토대로 이 책을 저술했다.

그는 명상의 종교이자 평화의 종교로 알려진 불교가 디오니소스적인 파계의 종교(정글의 종교)이자 죽음의 종교였다고 고발한다.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명상은 내면의 열을 불길 삼아 출가자 자신을 희생 제물로 삼는 정신적 희생제의였다. 붓다의 두개골 돌출은 그 ‘불 제사’의 결과물이며, 불가의 소신공양 전통도 그 연장선에 있다.

출가승의 롤 모델은 브라만 살해라는 최악의 죄업을 씻기 위해 지상에서 12년 동안 해골로 된 발우를 지니고 고행하는 힌두교 ‘파계의 신’ 시바다. 시바는 재가자들의 죄를 대신 먹어주는 희생양의 신이다. 출가승이 재가자들이 주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받아먹는 공양이야말로 그들의 악업을 대신 받아먹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정작 왜 ‘살아있는 시체(a living dead)’가 되어 심산유곡에 처박힌 출가승들이 공경의 대상이 되는지를 모른다. 그들이 예수처럼 스스로 희생양의 길을 걸음으로써 인간세상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희생제의적 폭력을 차단해준다는 것을 사람들의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