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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임을 위한 행진곡은 5월 광주의 전통”

입력 | 2013-05-13 03:00:00

1985년 5·18 5주기 추모식 때부터 애국가로 시작… ‘임을 위한’으로 마무리
광주전남 시민단체 “전통 지키겠다”




1980년 5월 25일 광주 시민들이 제작해 배포한 전단. 이 전단 끝 단락에 ‘김일성은 순수한 광주의거를 오판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 제공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휘날렸다. 5월 광주가 무력 진압된 뒤 1981년 열린 1주기 추모식은 애국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1980년대 중반 5·18 추모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등장했다. 그 뒤부터 5·18행사는 애국가로 시작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무리하는 전통이 자리 잡았다.

○ 5월 광주, ‘김일성의 오판’ 경고

1980년 5월 25일 당시 시민군들은 ‘광주 민주시민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전단을 배포했다. 당시 광주는 신군부의 명령을 받고 과잉 진압에 나섰던 공수부대가 일단 철수하고 시민군들이 지키고 있을 때다. 3차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 때 배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단은 광주 시민 명의로 작성됐다. 전단에는 ‘후손들에게 떳떳한 민주사회를 안겨 주도록 하자’, ‘전두환을 처벌하라’, ‘구속 중인 민주인사 석방’, ‘민주정부 수립’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끝 단락에는 ‘김일성은 순수한 광주의거를 오판 말라’고 적혀 있어 눈길을 끌었다. 당시 각종 전단에는 북한의 경거망동을 경고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5·18 당시 시민들은 태극기와 애국가를 빠뜨리지 않았다. 20일 오후 6시 40분 공수부대원들의 잔혹한 진압에 대항해 택시 200여 대 등이 금남로에 집결한 차량 시위 때도 태극기가 휘날렸다. 공수부대의 발포로 많은 시민이 사망한 것이 확인된 22일 낮 12시에는 전남도청 옥상에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로 게양됐다. 희생자들의 관은 태극기로 감쌌다. 공수부대가 물러간 23일부터 26일까지 전남도청 분수대에서 4차례 진행된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는 애국가로 시작됐다.

○ 애국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

1981년 5월 18일 광주 북구 망월동 묘역에서 제1주기 5·18추모식이 열렸다. 경찰 1000여 명이 묘역을 봉쇄했지만 유족과 학생 등 300여 명은 산길을 타고 묘역으로 갔다. 신군부는 추모식을 원천 차단했지만 유족들은 제사를 지내겠다고 주장했다. 제사용품을 운반할 수 없어 제사상도 없이 애국가로 추모식을 시작했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67) 이 사회를 맡아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끝났다. 정 전 회장은 이후 경찰에 체포돼 10개월 실형을 살았다. 1주기 5·18추모식부터 올해 33주년 5·18기념식까지 애국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행사를 시작한다.

5·18추모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부른 것은 1985년으로 분석된다. 5월 단체나 노래를 작곡한 김종율 씨는 1985년 제5주기 추모식에서 이 노래가 처음 제창됐다고 회고했다. 김 씨 등은 1981년 2월 20일 망월동 묘역에서 5·18 시민군 대변인으로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윤상원 씨와 1979년 노동현장에서 숨진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 노래극 ‘넋풀이’를 펼쳤다. 넋풀이는 노래 6곡으로 이뤄진 단편 뮤지컬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 뒤 1982년 4월경 광주 북구 운암동 황석영 작가 집에 김 씨 등 12명이 모여 창문을 군용 담요로 가리고 카세트테이프로 곡을 녹음했다. 1박 2일간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김 씨는 “윤상원·박기순 부부 영혼결혼식 이후에 선물로 만들어진 것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며 “카세트테이프가 은밀히 계속 녹음돼 전국에 퍼져 나갔다”고 말했다. 김 씨는 “1983년 군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서울 신촌에서 이 노래가 엄청 불리는 것을 알고 놀랐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5·18기록물에 포함될 경우 작곡 원본을 5·18아카이브(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 ‘5월 전통 지켜 내겠다’

1995년 망월동 묘역에서 열린 제15주기 추모식은 광주시가 주관했다. 추모식은 국민의례로 시작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끝났다. 1997년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가 완공돼 망월동 묘역에서 5·18열사들이 이장됐다. 2002년 5·18민주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됐고 2003년부터 국가보훈처가 행사를 주관하면서 추모식은 기념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2010년부터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려 한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5월 단체는 물론 광주 전남 시민사회단체는 올 33주년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반드시 제창하겠다는 방침이다. 신경진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58)은 “5·18기념식을 애국가로 시작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끝내는 5월 전통을 지켜 내겠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