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산업부 기자
취리히는 부(富)가 집중되는 금융의 중심지답게, 우아한 부르주아 스타일이나 슈트를 중심으로 한 ‘럭셔리 오피스룩’이 대세였다.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콘스탄츠에선 개성이 뚜렷한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스위스와 독일에서 16년간 거주한 한 현지 교민은 “취리히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관념도 높아, 주변 지역 주민들에 비해 몸매도 더 날씬한 편”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도 도시별로 패션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최근 본보 보도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본보가 전국 남녀 약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자료와 주요 유통업체들의 지역별 소비 특성을 분석해 만든 ‘대한민국 패션지도’에는 각 지역 주민들의 가치관과 성격이 묻어났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에게선 오랜만에 ‘로컬의 힘’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온라인 마케팅이 대세가 되면서 패션업계는 점점 ‘전국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산업의 특성과 국내 유통 환경을 고려할 때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로컬 브랜드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남한의 절반 크기보다 더 작은 땅 스위스에서도 ‘로컬 패션’이 글로벌한 성공을 거둔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취리히 출신의 형제가 만든 브랜드 ‘프라이탁’은 트럭 덮개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환경 친화적 브랜드다. 창업자 형제는 비가 자주 내리고, 자전거 인구가 많은 취리히의 로컬 환경에 맞춰 잘 젖지 않고,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주는 메신저백을 만들기 시작했다. 환경친화적 가치와 모던한 디자인에 대한 수요까지 맞물리면서 이 브랜드는 이제 의식 있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