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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 또만나/반또 칼럼]美 ‘의심과의 전쟁’… 우리라고 다를까

입력 | 2013-05-04 03:00:00


올해 신작 미드(미국 드라마) 중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작품이 케이블TV 채널 FX가 1월에 시작한 ‘디 아메리칸즈(The Americans)’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장교 출신인 작가 조 와이즈버그가 1980년대 미소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쓴 스파이물이다.

여행사 직원으로 살고 있는 엘리자베스 제닝스(케리 러셀)와 매슈 리스(필립 제닝스) 부부는 겉으로는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이지만 진짜 정체는 소련의 스파이다. 딸과 쇼핑을 다니고 주말에 교회에 나가는 모범적인 부모지만 밤에는 본국의 지령대로 미국의 기밀을 빼내고 상대 요원을 암살한다. 10년 넘게 이어 온 이런 이중생활은 옆집에 미국 연방수사국(FBI) 방첩부 직원 스탠 비먼(노아 에머리히)이 이사 오면서 틀어진다. 본능적인 ‘촉’으로 이들을 의심하는 스탠과 그럴수록 평범하게 보이려 애쓰는 주인공 부부. 점점 더 어려운 임무가 내려오고 FBI가 포위망을 좁혀 올수록 긴장도 고조된다.

놀랍게도 이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옛 소련은 실제 ‘불법 입국자 프로그램(Illegals Program)’이라는 이름의 작전을 통해 평범한 미국 시민으로 보이는 첩보요원을 대거 운용했다. 평범한 부부,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으로 보내는 메일 내용에 미국의 대외 정책과 핵무기 정보가 담겨 있었다.

냉전시대 첩보전이라는 케케묵은 소재가 2013년 시청자에게도 먹힌 이유는 ‘평범한 이웃이 사실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적’이라는 요즘 미국 주류 사회의 잠재적 불안감이 투영된 결과다. 불안감은 의심을 낳는다.

지난달 있었던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은 미국인들의 잠재된 의심에 불을 댕겼다. 미국 사회는 사건 용의자들이 외부에서 온 적이 아니었다는 데서 큰 충격을 받았다. 용의자들은 러시아 이민자 출신 형제였지만 평범한 10, 20대 청년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동생은 명문대인 다트머스 의대를 다니고 잘 배운 이른바 ‘아메리칸’이었다.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한 형의 아내도 남편이 용의자라는 사실을 TV로 알았다고 한다.

이제 아메리칸도 아메리칸을 믿지 못한다. 조지아대는 졸업식에 백팩을 메고 오는 것을 금지했다. 테러 위험 때문이다. 알카에다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만 요주의 인물로 감시하던 미국 정보 당국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자는 의심과의 싸움이 다시 시작된 미국 시민들이다. 서로에 대한 의심,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한정훈 채널A 기자 exist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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