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언론인 된 영국인…그 사연이 궁금했어요”
정진석 교수는 “배설은 국한문, 한글, 영문 3개 신문을 발행하며 일제와 싸운 항일언론투사”라고 말했다. 기파랑 제공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74)가 영국인으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배설(裵說·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사진)의 생애를 추적한 책을 펴냈다.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동포를 구하라’(기파랑)라는 책 제목은 배설이 37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며 독립운동가 양기탁에게 남긴 유언에서 따온 말이다.
정 교수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배설에 대한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기자협회보 편집실장이던 1976년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을 손으로 한 장씩 넘겨가며 영인 작업을 벌이면서 언론인 배설의 삶에 매료됐다. “한국과 별 관련이 없던 배설이 어떻게 한국에서 일제의 검열을 안 받는 치외법권을 이용해 대표적인 항일 언론인이 됐는가가 궁금했어요. 그의 출생부터 한국에 오게 된 경위가 하나도 알려진 게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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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가 발굴한 외교문서를 보면 일제 통감부가 영국 정부에 배설을 추방하고 신보를 폐간시키라고 얼마나 심각하게 협상을 벌였는지 알 수 있다. 또 상하이 주재 영국 고등법원 판사와 검사, 일본인 서기관과 증인들, 한국인 의병대장 증인까지 참여한 배설의 재판기록은 우리 사법사에 남는 국제재판으로 기록됐다.
배설은 최근 서재필기념사업회에 의해 ‘올해의 민족언론인’으로 선정됐다. 정 교수는 “배설은 황성신문에 실렸던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며 “그가 운영한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이자 신민회의 비밀 총본부, 항일 민족운동의 커다란 울타리였다”고 평가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