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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주원]걸 게 없으면 배임죄로 걸면 된다?

입력 | 2013-04-10 03:00:00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면서, 기업 경영과 관련하여 배임죄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인이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치게 되면 업무상 배임죄로 손쉽게 처벌되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일본 등에도 배임죄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 배임죄의 구성 요건이 가장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우리 배임죄는 ‘재산적 비행의 하수종말처리장’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처벌 범위가 넓다. 그 가벌성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여 ‘걸게 없으면 배임죄로 걸면 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배임죄의 임무가 신의성실의 모든 의무라고 보는 이상 회사의 주주만이 아닌 채권자 일반으로 임무 대상이 확장되고, 모든 경제 행위는 동전의 양면처럼 누군가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기업인의 경영 활동은 모두 배임죄의 대상으로 포섭될 가능성이 있다. 회사에 현실적으로 재산적 손해가 발생한 경우는 물론이고 손해 발생의 위험만 있어도 배임죄로 처벌된다.

기업 경영 활동의 본질적 속성이 자율성, 창의성, 모험성에 있다는 점은 다 아는 사실이다. 위험과 이익의 경계선에서 기업은 불완전한 지식과 정보에 따라 미래의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무릅쓰고 창조적 혁신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험적 결정에는 당연히 손해 발생의 위험이 따르게 된다. 결과가 실패라고 해서 처벌 대상이 된다거나 결과가 성공이라고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면, 불투명한 미래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은 퇴조하고 말 것이다. 정상적인 경영 판단인지 업무상 배임인지의 구별 기준이 모호하다면 그것은 기업인에게 양날의 칼과도 같은 셈이다.

개인적인 이익 추구를 의도한 경영진의 고의적 배임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와 강한 형벌이 가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인 이익 추구가 아닌 기업의 정당한 경영 활동에 대한 형사적 개입은 합리적인 범위로 제한되고 자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임죄의 지나친 확대 적용은 기업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파괴하고 종국에는 국가의 경제 발전이나 산업의 고도화를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배임죄의 과도한 확대 적용으로 경영 활동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는 그만큼 사회 발전의 원동력 또한 크게 잠식될 수밖에 없다.

기업 경영 활동의 긍정적 측면의 발현을 주저하게 하는 과도한 형사처벌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세계 선진 각국의 공통된 추세이기도 하다. 기업집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개별 회사의 독자적인 기업 활동보다는 다수 회사들의 인적, 자본적 결합을 통한 조직 형태인 기업집단은 오늘날 경제적 실체로서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프랑스 대법원은 1985년 로젠블룸 판결을 통하여 기업집단의 회사재산 남용 행위에 대하여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예외적 면책 요건을 확립하였다. 설령 계열사 간 거래로 일부 개별 회사가 손해를 입었더라도 전체 그룹 이익(group interest)을 중심으로, 기업집단의 존재, 통일된 경영 전략의 존재, 계열사의 출연에 대한 계열사 간 이익과 부담의 균형이라는 요건이 모두 충족된다면 그 처벌을 면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이탈리아에서 2004년 아예 입법화되기도 하였다.

과도한 배임죄 처벌의 문제점을 직시한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보다 성숙된 논의를 통하여 신중하게 합리적이고도 적정한 배임죄의 처벌 범위를 정립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지나친 형사적 개입은 결국 기업 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경제에도 불이익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