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군사들의 체력훈련
맨손 무예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군에는 태권도는 물론이고 특공무술을 배워야 하는 병과가 적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모든 군인들이 육박전 훈련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인간의 근력으로 전투를 치르던 조선시대 군사들은 당연히 체력과 무예 훈련을 중점적으로 했다. 다음은 조선시대 군사들의 주요 훈련들이다.
모래주머니 차고 진법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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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시대 달리기 훈련은 요즘처럼 맨몸으로 가볍게 뛰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료에 따르면 갑옷을 단단히 동여매고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를 들고서 전속력으로 300보(약 360m)를 일정 시간에 주파해야만 최고의 군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시간은 주통(注筒)지법이란 일종의 물시계로 쟀다. 구멍이 뚫린 통에 담은 물이 빠지는 것을 보면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있었다.
짧은 칼을 사용하는 군사들은 그나마 무기가 짧고 가벼워 빠르게 뛸 수 있었다. 하지만 4m가 넘는 장창과 같은 긴 무기를 사용하는 군사들에게 달리기 훈련은 엄청난 고통이었다고 한다.
②실전보다 장비를 무겁게=달리기 훈련이 끝나면 바로 병기 훈련이 이어졌다. 훈련장에서는 의도적으로 실전에 쓰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무기를 활용해 군사들의 힘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이는 조선시대 군사 훈련의 기본 철학이 ‘사람의 혈기(血氣)를 왕성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료를 살펴보면 ‘군사들의 몸은 쓰면 쓸수록 견고해지고 쓰지 않으면 약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를 바탕으로 힘줄과 뼈를 수고롭게 해서 몸을 고달프게 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일반적인 가죽갑옷을 입는 군사들은 갑옷 안에 돌덩어리를 천으로 싸서 묶었다. 훈련용 칼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무거운 목검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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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철갑옷 입고 공성전 연습=조선시대 군사들이 입었던 갑옷은 병과마다 특징이 있었다. 보병은 적에게 온몸이 노출되기에 무릎 아래까지 덮어주는 긴 원피스 모양의 갑옷을 입었다. 기병은 말 위에 올라타 상체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상·하반신이 분리된 짧은 갑옷을 착용했다. 활을 쏘는 궁수는 활시위를 크게 당겨야 하기에 갑옷 자체가 넉넉하고 풍성했으며, 긴 창을 쓰는 창수는 무기가 옷에 걸리지 않도록 몸에 딱 맞는 갑옷을 입었다.
움직임이 많은 보병은 주로 가벼운 가죽갑옷을 입었다. 그렇지만 주야로 이어지며 오랜 시간에 걸쳐 성을 공격하는 공성전 훈련 때는 무거운 철갑옷을 입어 그 무게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훈련이 되도록 했다. 또한 철두철미한 지휘관을 만나면 모든 군사들이 다른 병과의 갑옷을 입고 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병사들이 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미리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지휘관의 의도였다. 이런 훈련 내용들은 ‘훈련은 불편하게, 실전은 편하게’라는 오늘날의 군사 운용 철학에도 잘 들어맞는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강도 높은 훈련
④살상력을 억제한 무기로 교전 훈련=이렇게 달리기 훈련을 기본으로 한 후 갑주를 입고 진법 훈련을 마치면 병사들이 서로 무기를 들고 겨루는 ‘교전 훈련(대련)’이 이어졌다. 이때는 혹시 모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무기에 가죽을 두껍게 씌워 훈련에 사용했다. 짧은 칼을 사용하는 도검수(刀劍手)들은 나무로 만든 목검에 가죽을 씌운 피검(皮劍)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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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활을 쏘는 궁기병 역시 화살촉을 완전히 제거하고 끝부분을 솜과 천으로 마무리해 만든 무촉전(無鏃箭)에 붉은 물감을 묻혀 교전 훈련에 썼다. 특히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며 다양한 전술 및 사냥 훈련을 할 때는 모구(毛球)라는 도구를 이용한 특수 훈련을 병행했다. 모구는 싸리나무로 둥근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가죽을 씌워 공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앞쪽의 기병 한 사람이 끌고 달려 나가게 했다. 그 뒤를 따르는 여러 명의 군사는 공을 쫓아가며 활로 사격을 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군인들이 사용하는 무기도 첨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군사들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버튼을 눌러 적의 영토를 파괴할 수는 있지만 점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전통시대든 오늘날이든 군인들이 체력단련을 하는 본질적 이유다.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