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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기자의 영화와 영원히]지루할 틈 없는 타란티노의 장난기

입력 | 2013-03-26 03:00:00


타란티노의 영화에 한없이 선량한 ‘맹탕’ 캐릭터는 없다. 노예제를 반대하는 닥터 킹은 범죄자를 무조건 사살하는 무자비한 현상금 사냥꾼. 소니픽처스 제공

‘이죽거림의 미학.’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21일 개봉)를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165분이나 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사진)의 주체할 수 없는 장난기가 끊임없이 관객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우선 주인공의 이름부터 보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연기한 극악한 대부호의 이름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다. 파리 잡듯 흑인노예들을 개 먹이로 던져주는 이 악한의 이름이 너무도 달콤한 캔디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폼 잡는 캐릭터는 노예제의 피해자인 흑인 장고(제이미 폭스). 그를 돕는 백인 치과의사의 이름은 닥터 킹(크리스토프 발츠). 세상의 부조리를 치유하는 캐릭터의 이름으로 의사만 한 게 또 있을까. 하지만 백인이 나서서 노예제를 반대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오산. 미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다. 여기에도 타란티노의 이죽거림이 있다.

타란티노의 장난기가 극에 달하는 순간은 KKK단이 흰 두건을 쓰고 장고와 닥터 킹을 급습하는 장면.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KKK단원들은 흰 두건의 눈 구멍이 잘못됐다며 서로 다툰다. 극악한 이들이 ‘바보 삼식이’가 되는 순간이다.

급기야 타란티노는 본인까지도 희화화의 대상으로 만든다. 타란티노는 막판 카메오로 나와 다량의 다이너마이트를 안고 어이없이 산화하는 노예 상인을 연기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살점과 피가 튀는 장면들은 스스로의 출연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노예제도라는 심각한 역사적 문제를 일부러 가볍게 비트는 그의 장기가 드러난다.

타란티노는 1992년 각본, 연출, 출연까지 원맨쇼를 한 ‘저수지의 개들’로 데뷔했다. 1994년에는 ‘펄프픽션’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지내며 2004년 박찬욱 감독에게 2등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안겨준 주인공이다.

그는 젊은 시절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하루 종일 비디오를 보고 손님들과 토론하는 게 일이었다. 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 수다쟁이 감독은 잘난 척하지 않는다. 오늘도 그의 장난스러운 수다가 스크린에 가득할 뿐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