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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선박가격 ‘뚝’… 계약취소 도미노

입력 | 2013-03-26 03:00:00

2007년 호황기 대비 40%까지 하락
“계약금 떼여도 계약 엎는게 이익”… 유럽 선사들, 해지하고 재발주 추세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국내 조선사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선박의 발주가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 선주사들이 건조 비용이 싼 새 계약을 맺기 위해 기존 계약을 해지하거나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선박 건조를 포기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삼성중공업은 2007년 10월 이스라엘 선사인 ZIM에서 수주한 1만26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의 컨테이너선 8척 중 5척의 계약이 취소됐다고 19일 공시했다. 수주는 5년여 전에 했지만 그동안 ZIM은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이유로 납기일과 중도금 입금을 계속 미뤄 왔다. 삼성중공업은 ZIM의 사정을 감안해 5척의 계약을 취소하고 나머지 3척의 계약 기간도 연장해 줬다.

그러나 ZIM 측은 삼성중공업과 계약을 취소한 이후 비슷한 크기의 컨테이너선 발주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은 조선업이 최고 호황을 누리던 시기여서 당시에는 선박건조 비용이 높았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ZIM은 우리와 계약을 취소하면서 5100만 달러(약 571억 원)의 계약금을 포기해야 했지만 지금 선박 건조 대금이 많이 떨어져 새로 계약을 하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STX조선해양도 지난달 유럽 선주사에서 수주한 벌크선 2척의 계약이 해지됐다고 밝혔다. 이 역시 유럽 선주 측이 선수금을 입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2008년 유럽 FLEX에서 수주한 2조6000억 원 규모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LNG-FPSO) 4척에 대한 계약을 취소했다. 이 선사 역시 세계 최초로 LNG-FPSO를 발주해 주목 받았지만 선박의 사용처를 확보하지 못한 데다 금융위기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계약 이행을 차일피일 미뤄 왔다.

계약이 취소되는 원인에는 선사들의 자금난도 있지만 현재 선가가 많이 떨어진 영향도 있다. 경기가 좋았던 2007, 2008년과 비교해 현재 선가가 최대 40%까지 떨어진 상황이라 계약금을 떼이고서라도 다시 발주하는 게 이익이라는 것이다.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의 경우 불황으로 당장 나를 화물이 없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2009년 금융위기 직후 발주된 컨테이너선, 벌크선, 탱커의 경우 운임이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선주사들은 선박 계약을 줄줄이 취소했다. 수주 잔량이 급격히 줄고 발주가 연쇄적으로 취소되면서 조선사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일부에서는 현재 수주 취소는 2009년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우창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재 상선 수주 잔량 대부분이 금융위기 이후에 계약한 것이어서 추가적인 수주 취소 가능성은 낮다”며 “수주 취소의 원인이 현재 컨테이너선 업황이 부진해서라기보다는 2007년 수주 당시의 컨테이너선 가격과 현재 가격의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사들도 “선박을 다 건조해 놓고 손해를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선박 건조 대금은 보통 건조 공정의 진행 상황에 따라 4, 5차례에 나눠 지급된다. 1차로 지급되는 계약금 단계나 설계에 맞춰 후판을 자르는 단계에서 계약이 취소되면 조선사는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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