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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희권]글로컬 시대의 생존법

입력 | 2013-03-21 03:00:00


박희권 주페루대사

한 탈북자 부부가 미국으로 갔다. 그들의 꿈은 미국 시민권을 따는 것. 수년을 참고 기다리던 어느 날, 남편이 학수고대하던 소식을 가지고 부엌으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여보, 드디어 우리가 미국시민이 됐어!” 아내는 반색하더니 즉시 앞치마를 벗어 남편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좋아요, 이제부터는 당신이 설거지를 하세요”. 여성들의 탁월한 문화적 적응력을 보여주는 우스개다.

21세기를 특징짓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바로 세계화와 지역화다. 경제의 세계화에 따라 시장이 통합되고 기술이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문화정체성 추구 차원에서의 지역화도 진행되고 있다. 언뜻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두 가지 흐름이 21세기 지구촌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도 이 두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세계화 물결 속에서 각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교역의 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총 205건의 FTA가 체결되는 등 FTA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이러니는 세계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문화적으로는 훨씬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설적이지만 문화 다양성은 인터넷에 기반한 정보혁명이 주도하고 있다. 과거 정치적 이념, 종교, 국경 등의 장벽으로 단절되어 있던 상이한 문화권 사이의 교류와 상호작용이 정보혁명에 힘입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문화 다양성은 인종 다양성에 의해 견인된다. 국경을 넘는 이민이 증가하고 타 인종과의 결혼이 증가함에 따라 인종 다양성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50년 미국인 20명 중 1명은 복합인종(multiracial)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2007년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가장 많은 성씨가 스미스(Smith)를 제치고 중국인 성인 리(Li)가 됐다. 밴쿠버에서 중국계 인구의 비율은 무려 20%에 달한다. 대표적인 단일민족 국가로 꼽히던 한국도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다.

그렇다면 다문화 시대를 맞아 우리는 대외적으로 어떤 국가발전 전략을 세워나가야 할까. 우선 국가별 문화적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진출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이미 다문화 전략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고 각국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상품 개발이나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실례로 글로벌 기업인 맥도널드가 일본 도쿄에서는 데리야키 버거를 판매하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와인을 판매하며, 서울에서는 불고기 버거를 판매하고 있다. 식품회사 오리온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초코파이를 내세워 중국시장에서 1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타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타 문화와 소통하고 융합하는 데 탁월한 전문가 양성도 필요하다.

문화 다양성 시대는 개성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20세기 후반 우리의 경제발전을 일구어낸 것은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과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쟁이 첨예화되고 있는 소위 ‘글로컬(glocal)’ 시대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아이디어와 톡톡 튀는 창의력을 요구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다양하고 개성 있는 사고방식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적,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글로컬 시대 문화의 실수요자인 일반 대중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감안해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고 제반 분야에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공공외교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결국 문화 다양성이라는 추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국지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박희권 주페루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