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봄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1910∼1987년)는 일본의 경제계획을 담당했던 이나바 히데조(稻葉秀三) 박사를 만났다. 이나바 박사는 일본이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정책을 전환해 제철, 조선, 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의 생산 규모를 대폭 억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과잉 생산으로 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대외적으로는 덤핑 수출로 국제 무역마찰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나바 박사는 “그 대신 반도체, 컴퓨터, 신소재, 광통신 등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기술 분야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 결과 수출은 늘고 외화 수입이 급증했다. 일본의 살길은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첨단기술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경박단소는 가볍고 얇고 짧으며 작은 제품을 말한다.
조선과 제철 등 중후장대(重厚長大)한 중화학공업 대신 첨단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호암은 무릎을 쳤다. 호암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사업이었다. 반도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풀기 쉽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지만 호암은 특유의 스피드로 사업을 진행했다. 1982년 반도체·컴퓨터사업팀을 꾸렸고 1983년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투자한다고 공식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1984년 5월 경기 용인시 기흥에 첫 반도체 공장을 세웠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 것이다.
호암은 시대의 흐름을 아는 경영자였다. 삼성은 광복 후와 6·25전쟁 중 무역으로 물자를 조달했고 전후에는 설탕과 같은 수입 대체 산업에 손을 대 자립경제의 틀을 만들었다. 이후에는 중화학공업에 투자하며 기간산업 기반 조성에 힘썼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최첨단 산업인 반도체 사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5년 내놓은 ‘한국기업 성장 50년의 재조명’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들은 기반형성기(1955∼1970년), 고도성장기(1971∼1987년), 전환기(1988∼1997년), 재도약기(1998∼2005년)를 거쳤다. 삼성은 각각의 시기마다 꼭 필요했던 사업을 하는 주력 기업을 가지고 있었다. 삼백산업(제품이 흰색을 띠는 밀가루, 설탕, 면직물 산업을 의미)이 부상했던 기반형성기에는 제일제당이, 종합상사와 건설사가 대표기업이던 고도성장기에는 삼성물산이, 전자와 자동차 산업이 대표업종이던 전환기 이후에는 삼성전자가 그룹의 대표 주자였다. 모두 호암이 필요성을 느끼고 남보다 한발 앞서 세운 기업이다.
1965년 국내 매출액 100대 기업 중 2000년대 중반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2개에 불과하다. 1900년 미국의 상장회사 가운데 남아 있는 기업은 GE뿐이다.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 1938년 삼성상회라는 가게로 시작한 삼성은 호암의 시대적 흐름을 읽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튼튼한 기반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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