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과 철학/마크 화이트, 로버트 아프 엮음·남지민 신희승 이해림 차유진 옮김360쪽·1만7000원/그린비
책엔 없으니 신문에라도 실을 수밖에.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 히스 레저. 동아일보DB
아아, 다 필요 없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등장하는 헌사. 이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차고 넘친다. 21세기 제임스 딘 반열에 오른 레저에게 바친다는데, 그럼 됐다. 서평 끝.
안타깝다. 이러쿵저러쿵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진심으로 말씀드리니, 이 소개 글은 더 읽을 필요 없다. 배트맨을 좋아한다면 조커가 그립다면, 여기서 멈추고 책을 보시라. 하긴 배트맨은 개뿔, 슈퍼맨도 지겹다 하는 분도 있겠다. 그럼 이 책, 눈길도 주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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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배트맨과 철학’은 평소 배트맨 애독(청)자들이 가졌던 철학적 혼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 주는 책이다. 배트맨은 왜 그렇게 당하고도 끝끝내 악당들을 살려둘까(영화에선 잘 죽인다). 갑부인 브루스 웨인이 뭐가 아쉬워서 불법 자경단이 되어 밤거리를 배회할까. 허구한 날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면서 결국엔 다시 쫄쫄이를 입는 이유가 뭘까. 친절하게도 미국에서 나름 일가를 이룬 철학 종교학 윤리학(심지어 물리학까지) 교수와 박사들이 이런 궁금증을 학문적으로 접근한다.
배트맨은 어릴 적 상처를 박쥐에 투영시켜 존재 방식을 찾는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더라도. 동아일보DB
‘똘끼’는 충만하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부모가 목숨을 잃은 뒤 눈이 뒤집혔다. 초등학생쯤 되는 애가 복수도 아니고, 평생 악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러곤 영웅도 범죄자도 아닌 ‘다크 나이트(Dark Knight·어둠의 기사)’로 산다. 분명 나쁜 놈 같진 않은데, 애들한테 “본받으라”고 권하긴 머뭇거려진다. 만화나 영화가 나올 때마다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이런 모호한 경계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배트맨과 철학’이 명쾌한 해답을 주리라 기대하진 말자. 알잖은가. 철학이 언제 우리 등을 시원하게 긁어준 적이 있던가. 그래도 이 책은 좋은 의미에서 꽤나 편향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비트겐슈타인까지 어질어질한 철학이 수북하지만, 결론은 배트맨이 몇 가지 결점은 있을지언정 옹호 가능한 캐릭터라고 쓰윽 손을 들어준다. 안쓰럽긴 해도 악플 달릴 정도는 아니란 거다. 하긴, 배트맨도 슈퍼맨처럼 ‘우리의 친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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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