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기억/전민식 지음/440쪽·1만3500원/은행나무
두 번째 장편소설 ‘불의 기억’을 펴낸 소설가 전민식. 작가는 거대한 종을 제작하는 장인들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치열한 재기의 노력을 감동적으로 펼쳐냈다. 은행나무 제공
이제는 아련한 기억으로 남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소설은 한반도가 온통 축구 열기로 뜨거웠던 그때 20t짜리 성덕대왕신종을 넘어서는 30t짜리 월드컵 기념종을 만들었던 두 장인의 성공과 좌절, 절망을 그린다.
물론 당시 그런 종도, 그런 종을 만든 사람도 없다. 하지만 소설은 평생의 역작으로 남을 종 제작에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다. 마치 진짜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초반부를 차지하는 기념종 제작과정은 이야기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사실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실패 후 종 제작에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의 끈질긴 집념이다. 예술혼 운운은 지루해질 수 있다. 참고 읽을 진득한 독자도 적다.
작가는 여기에 여러 미스터리를 가미하는 영민함을 선보인다. 규철의 아내가 살해되고 규철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살해현장을 목격한 규철의 딸은 두 남성의 흔적을 봤다. ‘범인이 누구인가’란 의문은 작품 끝까지 이어지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또 다른 미스터리는 거대 종 제작의 비밀. 다시 30t짜리 종 제작에 돌입한 규철, 그리고 그의 친구인 한위는 아기를 넣어서 만들었다는 성덕대왕신종의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결국 거대한 종이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사람의 ‘인(P)’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일까. 장인들의 고민은 깊어진다.
작품은 종 제작과 살인사건이란 두 가지 비밀이 맞물리며 탄력적으로 진행된다. 살인사건에 대한 결말은 다소 엉뚱하지만 종 제작에 얽힌 장인들의 고뇌와 절망을 잘 끄집어내 책장을 덮고 나면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팍에 박히는 듯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