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이래 최대’ 31조 규모 용산 개발사업 물거품 위기
○ 하루 만에 디폴트로 급반전
12일까지만 해도 이 사업의 수명은 연장되는 듯했다. 12일 이자 납입 마감시한을 수차례 연기한 끝에 대한토지신탁, 코레일, 사업 실행 회사인 용산역세권개발㈜은 지급보증 문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새 상황이 바뀌었다.
이를 두고 코레일은 “민간 출자사들이 협상력이 없어서 무산됐다”고 주장했고, 용산역세권개발은 “코레일이 최종 합의까지 가놓고 의도적으로 디폴트 상황을 만들었다”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 디폴트 이후 진행 절차
채무불이행이 바로 부도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문제의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만기는 6월 12일이라 아직까지 부도가 진행되려면 3개월 정도 시한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개발시행사인 드림허브에 남은 자금이 7억 원에 불과한데 4월부터 12월까지 총 2조4000억 원의 빌린 자금 만기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사업 주체들이 사업 재개에 합의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데다 채권 규모가 워낙 커 법정관리보다는 파산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코레일은 파산이 되더라도 ‘자체 개발 방식’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업이 최종 파산하면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해 용산 터를 되찾을 것”이라며 “사업의 틀을 새로 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코레일의 계획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사업이 이렇게 좌초한 가장 큰 원인은 미래에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들어설 아파트, 상가 분양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사업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새 판을 짠다고 해도 투자자들이 쉽게 뛰어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메가톤급 후폭풍
개발사업이 파산하면 수조 원의 소송전 등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투입된 자금은 총 4조 원에 이른다. 사업이 최종부도 처리되면 매몰비용(사업 무산 시 회수 불가능한 비용)만 약 1조 원으로 추산된다.
당초 코레일은 고속철도 개발 등으로 진 부채 4조5000억 원을 털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약 7000억 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자본금 감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레일은 용산개발 터를 돌려받는 대신에 이미 받았던 땅값 2조7000억 원을 돌려줘야 한다.
고객의 투자를 받아 사업에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들의 고민도 크다. 드림허브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금융회사는 KB자산운용, 푸르덴셜부동산투자, 삼성생명, 우리은행, 삼성화재 등이다. 국민연금도 간접적으로 1250억 원 정도를 투자했다.
GS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다른 민간 출자사들도 출자 지분만큼 손해를 보게 됐다. 이날 증시에서 롯데관광개발의 주가는 하한가로 추락했고 삼성물산 등도 하락했다.
출자금을 잃을 위기에 처한 민간 출자사 관계자는 “아직 최종부도에 이르진 않았지만 투자금의 일부라도 찾을 방법은 소송밖에 없을 것 같다”며 최대 주주인 코레일에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장윤정·박재명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