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논설위원
베트남과 인도 농민이 특별히 부도덕한가. 포상금만 제대로 쳐준다면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돈과 인센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를 무시한 정책은 헛심만 쓰고 실패할 소지가 크다. 사람을 탓하기 전에 부당이득의 유혹부터 제거해야 한다.
세계 석유 정제 능력 6위의 한국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막대한 가짜 석유 시장도 정책이 만든 대표적인 ‘코브라 비즈니스’다. 가짜 석유로 인한 탈세 규모는 연간 1조 원이 훌쩍 넘는다. 무자료 거래와 유가보조금 부정 환급까지 합하면 3조7000억 원의 세금이 줄줄 샌다는 분석이 있다. 가짜 석유는 국민 안전을 위협하고 기름값 상승을 부추긴다. 김형건 대구대 교수는 “가짜 석유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 정유 4사의 독점을 깨는 독립 폴 주유소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고 말한다. 영국이나 이탈리아처럼 인도(人道) 밑에 탱크를 설치한 무인주유소를 가짜 석유 천국인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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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차기 정부가 지하경제의 암 덩어리인 가짜 석유에 칼을 빼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막대한 대선 공약 재정(5년간 약 134조5000억 원)을 장만하자면 가짜 석유 시장에서 한 푼이라도 더 세금을 걷어야 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지식경제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주유소의 석유 수급 현황을 매일 들여다보는 석유 수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주유소를 전 방위로 감시하겠다는 뜻이다. 단속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부당이득의 유혹을 근본적으로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주유소들이 영업시간을 최대한 줄여 신고하고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 영업외 시간에 가짜 석유를 판매한다면 속수무책이다.
30여 년간 가짜 석유를 근절하지 못한 이유는 처벌과 단속만 강화하고 부당이득의 유혹을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송용이나 난방용 등으로 쓰이는 서로 다른 에너지원 간의 세금 차이는 가짜 석유 유통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전력 같은 에너지원의 과소비를 불렀다. 이번 기회에 2005년 2차 개편 이후 누더기처럼 변한 에너지 세제를 완전히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탄소세 도입도 3차 에너지 세제 개편의 틀에서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연간 20조 원이 넘는 유류세를 걷으면서도 가짜 석유에 대한 관심이 낮다. 가짜 휘발유를 막기 위해 용제에 휘발유와 동일한 세금을 붙이고 나중에 환급해 주는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은 이런저런 현안에 치이고 환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가짜 석유는 이제 품질이 아니라 세금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