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섭 객원논설위원·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휴전 60주년을 맞이해 일각에서 휴전체제를 이젠 평화협정으로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 60년간의 휴전이 국제법적(de jure) 전쟁상태였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평화협정에 의해 평화가 시작되는 시점(始點)이 곧 전쟁의 종점(終點)이라는 유럽의 근대국제법적 전통에 근거한 발상이다.
정작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의 평화협정이 체결된 바가 없다. 독일과의 평화협정이 없었던 유럽과 일본과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있었던 동아시아 중 어디가 더 평화로워 보이는가. 또 다른 평화협정의 패러독스는 1974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있었다. 미국이 서둘렀던 베트남 평화협정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공산화에는 캄보디아에서의 ‘킬링필드’로 대표되는 대량학살과 1979년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개시한 제3차 인도차이나전쟁으로 인한 참상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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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60년 동안의 휴전은 그 이전의 60년과 비교하면 ‘긴 평화’의 시기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과 세계적으로 6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몸살을 앓았다. 우리가 누린 60년간의 긴 평화를 가능하게 했던 휴전체제를 철거해야 할 ‘냉전의 잔재’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20세기 세계사에서 냉전의 반대가 평화가 아니라 열전(熱戰)일 수 있었듯이, 오늘날 한반도에서 휴전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일 수 있다.
그래도 굳이 평화협정으로 휴전체제를 끝내고자 한다면 ‘정지된 전쟁이 누구에 의해 시작된 것인가’부터 따져 물어야 한다. 1919년 베르사유 평화조약처럼 전쟁 책임을 조문에 명시하고 가혹한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전쟁의 진실을 직시하는 것은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한 평화협정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것이다. 진실을 회피하려고 둔사(遁辭)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들은 일본과 국교를 재개하기에 앞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개전대비(改前代非)’라는 문구를 받아냈다. 도쿠가와 막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배하던 전대(前代)에 잘못(非)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겠다는 ‘개(改)의 뜻’을 명기했던 것이다. 이런 절차가 없었다면 조선통신사는 항복 사절처럼 비쳤을 것이다.
7월 27일을 전승절(戰勝節)로 기념하는 북한 정권은 여전히 “미 제국주의자와 그 괴뢰 남조선”이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황당한 왜곡에 침묵하면서 평화협정이 종교적 주문처럼 평화를 가져다 주리라는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진보적인 자세가 아니다. 북예멘과 남예멘은 통일에 앞서 먼저 공통된 역사교과서부터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 국가연합 단계로 이행했는데도 서로의 인식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통일 예멘이 다시 내전으로 치달았던 경험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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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전쟁은 ‘평화를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평화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도한 경우가 많았다. 화해를 명분으로 전쟁의 진실을 덮고 휴전체제 대신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6·25전쟁에 관한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진실’과 지난 60년간의 상대적 평화가 휴전체제에 의해 가능했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60년간의 상대적 평화를 보다 영구적 평화로 이끌어 줄 이성의 향도성(嚮導星)이다.
김명섭 객원논설위원·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luesail@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