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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운영 경쟁체제 도입논란 긴급 점검] 해외 실패 사례의 진실

입력 | 2013-01-31 03:00:00

英 철도 민영화 실패? 안전도-서비스 꾸준히 높아져




영국 런던 시내 킹스크로스역에 ‘퍼스트 그레이트 웨스턴사’와 ‘버진 트레인사’ 열차가 나란히 서 있다. 이들 민간 철도회사는 주로 영국 북서부 지역 노선 여객 철도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에는 16개 민간 철도회사가 영업 중이다. 국토해양부 제공

철도 운송 시장에 민간 기업을 참여시켜 철도공사(코레일)와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정부 계획이 코레일의 반발에 부딪혀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정부와 코레일은 서비스 향상, 경영 효율성 등 경제적인 논리 싸움을 넘어 감정적인 충돌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안전성, 요금 등 쟁점마다 첨예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양측은 해외 사례를 놓고도 전혀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는 국내에서 철도 민영화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는 영국과 한국 정부의 계획처럼 시설과 운영을 분리(상-하 분리)했다가 최근 재통합을 검토 중인 프랑스 현지를 찾아 전문가들을 만났다.

○ 분리도 재통합도 불완전

프랑스 내 철도 전문가로 꼽히는 이브 크로제 리옹대 교수는 23일 파리 시내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프랑스의 철도 시설-운영 재통합 움직임에 대해 “국가 내 국가(State within state)로 불리는 철도공사(SNCF)의 노조에 굴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총연장 약 3만 km의 철도 시설과 운영을 총괄하는 SNCF 직원은 15만6000여 명에 이른다.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EU)의 지침에 따라 1997년 SNCF가 독점하던 시설과 운영 주체를 분리했다. 시설 부문을 떼 내 시설관리공단(RFF)에 이관한 것. 내부적으로는 SNCF의 막대한 부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2006년에는 화물운송 분야를 민간에 전면 개방해 현재 19개 민간 철도 운송회사가 영업 중이다. 하지만 양 기관 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비효율성과 중복 투자 등으로 부채가 더 쌓였고, 급기야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10월 양 기관의 재통합 방침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가 검토 중인 재통합 방안은 RFF와 SNCF 내 시설관리 조직인 SNCF Infra 등을 통합한 새로운 조직(GIU)을 만들어 SNCF 아래에 둔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외형적으로는 통합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크로제 교수는 “여야 정치권이 철도노조의 압력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SNCF 아래에 RFF와 GIU, DCF(철도 관제기구) 등을 두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불완전한 시설-운영 분리처럼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일 뿐”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철도 시설-운영 분리 체계는 기형적인 구조다. 운영 기관인 SNCF에는 4만여 명의 유지 관리 인력이 있지만 정작 시설관리자인 RFF에는 시설 유지 관리 인력이 없다. 유지보수는 SNCF가 보고서를 제출하면 RFF가 확인 후 결정하고 현장 확인 및 점검은 용역을 통해 이뤄진다. 크로제 교수는 “1997년 분리 당시 철도노조가 SNCF를 지지하면서 SNCF 내 철도 시설 전문 인력의 RFF 이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의 브뤼노 다르시에 교수도 “정치적 힘을 잃지 않으려는 15만 명이 넘는 SNCF 구성원들 때문에 RFF에 충분한 자율권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철도 시설과 운영 분리, 자유로운 경쟁을 요구하고 있는 EU 철도지침 위배 여부에 대해서도 프랑스 정부는 어정쩡하다. 재통합을 천명하고서도 2019년으로 예정된 ‘철도여객 운송 시장 완전경쟁체제 도입’이라는 EU 지침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 이는 SNCF로 재통합이 이뤄져도 SNCF가 국내외 민간 철도회사와 경쟁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르시에 교수는 “정치권이나 좌든, 우든 이념적인 사람들은 효율성이나 조직 개선에 별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 “민영화 실패 사례” vs “우리와 다른 모델”

민영화 초기 시설까지 매각하는 바람에 사고가 잦았던 영국에선 최근 철도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는 외신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영국을 대표적인 철도 민영화의 실패 사례로 꼽는다.

기자는 24일 영국 내 철도 분야 권위자로 꼽히는 사우샘프턴대 존 프레스턴 교수를 연구실로 찾아갔다. 프레스턴 교수는 한국에서 영국이 철도 민영화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는 얘기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보여주며 “민영화 이후 영국의 철도 안전은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철도요금 인상에 대해서도 그는 “그동안 소홀했던 철도 시스템 개선에 대한 투자 때문”이라며 “비록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요금이 다소 비싼 편이지만 민영화 이후 요금 인상률은 그 이전보다 더 낮다”고 설명했다. 영국 의회 통계에 따르면 민영화 이전인 1987년부터 1993년 사이 철도요금 연평균 상승률이 2.5%였지만, 민영화 이후엔 1.2%였다.

영국은 1994년 국철의 운영과 시설을 나눠 민간에 모두 개방했다. 하지만 시설 소유와 관리를 맡은 ‘레일트랙’이 투자를 게을리 하면서 2000년 햇필드 열차사고가 발생했고, 그 여파로 이듬해 파산했다. 이후 정부가 시설을 다시 국유화했지만 운송 부문은 여전히 16개 회사가 영업 중이다. 영국 교통부는 최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민영화 이후 영국 철도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사고율이 낮고 정시 운행률과 고객 서비스 만족도 역시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민영화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교통연구소 데릭 파머 박사는 “영국 철도 민영화는 다양하고 세분화된 철도 산업을 창출했다”며 “안전, 서비스, 신뢰도 등 여러 측면에서도 많은 기여를 했으며 정부와 철도회사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런던=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주요 노선 경쟁체제 도입… 요금 절반 낮춰 ▼

■ 한국과 비슷한 오스트리아 사례

세계적으로 철도 운영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경쟁력을 높이고 운임을 낮추는 등 성공한 사례는 많다. 유럽연합(EU)의 철도 지침에 따라 1990년대부터 시설과 운영을 분리해 경쟁체제를 도입한 유럽 국가 중에서도 스웨덴과 독일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구상하는 신규 고속철도 경쟁체제 도입 계획과 가장 유사한 모델은 오스트리아다. 오스트리아는 최근 한국의 경부선에 해당하는 구간 운영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요금을 절반으로 낮추는 효과를 봤다. 오스트리아는 면적이 8만3000여 km²로 남한(9만9000여 km²)과 비슷하며 국토를 가로지르는 가장 주요한 노선에만 처음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국토해양부는 2015년 수서에서 부산과 목포를 오가는 노선에만 우선적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오스트리아는 2011년 12월 우리의 서울∼부산 구간에 해당하는 구간인 빈∼잘츠부르크 구간(317km)에 처음으로 민간철도 회사 베스트반의 진입을 허용했다. 베스트반은 3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약 1800억 원을 투자해 구간 운영을 시작했다. 베스트반 출범 이전에는 빈-잘츠부르크 구간 등 오스트리아 철도의 모든 구간을 OBB라는 국영기업이 독점 운영했다. 빈∼잘츠부르크 구간에서 OBB는 47.5유로(약 6만9500원)를 받고 있었으나 베스트반은 이의 절반에 해당하는 23.8유로(약 3만4800원)를 운임으로 책정해 운영을 시작했다.

베스트반이 운영을 시작하자 OBB도 50% 할인 티켓을 도입하고 일부 티켓은 9유로에 판매하는 등 가격인하 경쟁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내세웠던 베스트반은 예상보다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하지만 두 회사의 가격 경쟁에 따른 이익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베스트반은 OBB와 경쟁하기 위해 열차 1량당 1명의 승무원을 배치해 서비스 품질을 높였으며, 베스트반이 닿지 않는 구간의 고객 편의를 위해 버스 노선 6개도 운영하고 있다. 베스트반은 사업 개시 후 6년이면 투자비 회수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