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씨처럼 일상생활에서 습관처럼 화를 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운전을 하는데 누군가가 끼어들면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고, 축구나 야구 경기를 보다가 선수들이 실수라도 하면 분을 이기지 못하기도 한다.
분노 증상, 방치해선 안 돼
충동조절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도벽, 방화, 도박중독, 발모(자신의 털 뽑기), 습관성 자해, 인터넷 중독, 쇼핑 중독 등이 있다. 충동적으로 어떤 일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잔뜩 긴장한다. 그러다가 그 일을 실행하고 나면 쾌감, 만족감을 느끼며 긴장에서 해방된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다 보면 반사회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화를 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손 씨도 충동조절장애일까.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손 씨가 급한 성격에 화를 더 내기는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 쾌감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성격적 결함’으로 인한 인격장애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유전적인 요인이 원인일 수 있다.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인 ‘세로토닌’은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어떤 유전자는 이 세로토닌의 분비량을 줄이는 기능을 한다. 그 결과 감정조절이 어려워지거나 급한 성격이 심해지면서 화를 잘 내는 것이다.
성격 변화로 인해 분노가 커질 수도 있다. 뇌의 앞부분에 있는 ‘전두엽’이라는 부위가 손상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충동을 조절하는 기능이 현격히 떨어진다. 성격이 급해지거나 고집스러워지고, 참을성이 없어져 충동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런 의욕이나 감정의 변화 없이 무감각한 상태로 지내기도 한다.
화를 잘 내고 걸핏하면 분노하는 사람은 그냥 방치해 두면 안 된다. ‘본인도 얼마나 속이 상하면 저럴까’ 하고 방치해 뒀다간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겐 대부분 약물치료가 효과가 있지만 인격적인 성숙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에 참가시키는 것도 좋다.
화 적절히 해소하는 것도 중요
화가 날 때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게 좋다고들 한다.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제대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화를 참고 있으면 적개심, 과민, 망상증 등 정신적으로 안 좋은 증상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무작정 화가 날 때마다 그대로 표출하면 안 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기 때문이다. 화가 나지 않도록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좋다.
현재 분노를 억제하는 치료법으로는 ‘인지행동 치료법’이 있다. 이 치료법에서는 환자 스스로가 자신이 부적절하게 화를 내는 상황에서 당시의 생각이나 감정을 인식하도록 한다.
의사는 이때 환자들이 비합리적인 생각을 버리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기존에 화를 냈던 상황에서 새로운 반응을 보이도록 훈련을 시킨다.
1988년에 1640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한 연구에서는 인지행동치료를 받은 사람이 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증세가 호전된 것으로 조사됐다. 환자들은 치료를 받은 뒤 8∼10주 만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인보다 집단으로 치료받을 때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호흡을 하거나 마음이 안정을 찾도록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화가 날 만한 긴장 상황에서 분노가 폭발하는 걸 억제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일들이 자기의 생각대로 돼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런 사람들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화를 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침착하고 합리적으로 자기주장을 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그 동안 자신이 분노를 분출하는 동안 손상됐던 인간관계를 어떻게 복원해야 할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도움말=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남궁기·고민정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