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유두종 바이러스, 그 정체는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청계광장에서 자궁경부암 예방 캠페인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산부인과에 가기 꺼려하는 미혼 여성들이 많이 참여해 전문의로부터 상담을받았다. 동아일보DB
부랴부랴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의사는 “성생활을 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평생 한 번쯤은 걸리는 흔한 바이러스로 ‘산부인과의 감기’라 불린다”며 “걱정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도대체 인유두종 바이러스의 정체는 뭘까. 암의 원인일까, 감기처럼 흔한 질환일까.
현미경으로 본 인유두종 바이러스의 모습 동아일보DB
이 바이러스는 100가지 이상의 유형이 있고 이 중 40여 종이 생식기 감염을 일으킨다. 하지만 80∼90%는 신체의 면역 반응에 의해 감염 후 1, 2년 이내에 사라진다.
김 씨가 감염된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유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궁경부, 질, 외음부, 항문 등 생식기 부위에 암을 발생시키는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 16, 18, 31, 45형은 암을 일으키는 고위험 유형으로 분류된다. 특히 16형과 18형은 자궁경부암 발생 원인의 약 70%를 차지한다.
30세 이상 여성에게 흔한 암
전문가들은 “성 경험 연령대가 낮아졌지만 결혼과 출산은 늦게 하는 경향이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의한 자궁경부암 발생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젊은 미혼 여성은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것을 꺼린다. 결혼을 앞두고, 혹은 임신을 했을 때에서야 처음 검진을 받는 여성도 적지 않다.
만약 20대 초반에 성관계를 시작한 여성이 30대 초중반에 산부인과 검진을 처음 받는다면 성생활이 이어진 지난 10여 년 동안 인유두종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은 무척 높다.
만약 고위험군에 감염됐다면 자궁경부암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임신 확인과 동시에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는 여성도 산부인과 진료 현장에서 적지 않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0세 이상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은 매년 1회 정도 정기적으로 자궁경부암 등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게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맞는 것도 좋다.
주요 접종 대상은 성 경험이 없는 10,20대 여성. 하지만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접종할 수 있다. 미국은 모든 연령대 여성에게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맞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남성에겐 생식기 사마귀 유발
한편 질암과 외음부암의 경우 자궁경부암과 달리 흔하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두 암 모두 초기 단계에는 별다른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수시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게 유일한 예방책이다.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남성에게도 감염된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성이 성관계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상대 남성을 감염시킨다.
남성의 경우 생식기 부위에 여러 개의 작은 돌기가 나타나는 생식기 사마귀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첨규콘딜롬, 콘딜로마, 곤지름 등으로 불린다. 가렵거나 쓰리고 아픈 증상이 나타나고 치료를 하더라도 쉽게 재발된다. 남성 역시 고위험 유형에 감염되면 음경, 항문 등에 암이 생길 수도 있다.
(도움말=김영탁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 임경택 제일병원 부인종양학과 교수)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