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내 딸 서영이’에서 호정은 상우가 미경과 헤어지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과 결혼하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한다. 결혼 후에도 상우가 미경을 몰래 만날까봐 조마조마해한다(왼쪽). MBC ‘백년의 유산’에서 며느리 민채원은 악독한 시어머니와 마마보이 남편에게 시달리다 기억상실증에 걸린다(가운데). SBS ‘야왕’에서 하류는 다해의 대학 등록금과 미국 유학비를 벌기 위해 호스트바에서 몸을 판다. 다해가 의붓아버지를 살해하자 시체를 매장해 주기도 한다. KBS, MBC, SBS 제공
○ 주연이면 복수의 화신, 조연이면 감초
대표적인 ‘답답남’은 권상우가 연기하는 SBS 월화드라마 ‘야왕’의 남자 주인공 하류다. 그는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다해(수애)가 어린 시절 자신을 성폭행했던 의붓아버지를 죽이자 몰래 시체를 묻어준다. 다해에게 “들키면 내가 죽인 거다”라는 다짐도 해둔다. “대학을 나오고 싶다”, “미국 유학을 가고 싶다”는 다해의 끝없는 요구를 화내지 않고 다 들어준다. 호스트바에서 일하며 몸을 팔기도 한다. 다해가 재벌집 아들과 눈이 맞았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답답이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대개 복수극으로 흐른다. ‘야왕’에서 하류는 다해에게 배신당한 사실을 깨닫고 곧 피 튀는 복수극을 펼친다. ‘백년의 유산’에서 시어머니에게 당하고만 살던 채원의 답답한 인생은 기억이 거짓말처럼 돌아오면서 끝나고 곧 복수극이 시작된다.
이와는 달리 가벼운 감초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는 답답이도 있다. KBS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조연인 호정(최윤영)은 남편인 상우(박해진)의 사랑을 받지 못해도 그와 시아버지(천호진)에게 지극정성이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그래도 화내기는커녕 결혼해준 것에 감사한다(으! 답답해). 호정의 밝디밝은 연기 덕에 조연임에도 상우와 호정 커플 팬이 많다.
○ 답답이의 치명적 매력
하류, 채원, 호정을 답답해하면서도 봐내는 이유는 이들이 아바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답답한 일상과 드라마 속 답답이의 삶이 겹쳐 속을 끓이면서도 그 캐릭터에 몰입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답답이들은 항상 악역에게 당하지만 결국엔 성공하고 인정받는다. 시청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답답이 캐릭터에게서 애잔함을 느끼게 된다”고 해석했다.
답답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이런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막장 드라마의 필수 요소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답답이가 악한에게 당하고, 치명적인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출생의 비밀을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건 막장 드라마의 상투적인 설정이다. 배국남 문화평론가는 “한국 드라마의 갈등 구조는 선악의 단순한 대결 구도에 머물러 있다”며 “현실 속에서는 선과 선이 부딪치는 경우가 많듯 단순한 갈등 구조를 다양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강수지 인턴기자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문현경 인턴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