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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잘나가던 프로게이머에서 유흥주점 ‘영업부장’ 된 성학승씨

입력 | 2013-01-11 03:00:00

게임은 끝났다… 스물아홉살 진짜 세상에 로그인하다




‘영업부장’ 성학승 씨가 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손님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있다. 영업부장은 손님 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기 때문에 항상 밝은 미소를 짓고 친절해야 한다. 성 씨는 매일 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쉴 새 없이 허리를 굽히며 사회를 배워가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금요일 밤 서울 강남역 일대는 넥타이 부대로 붐볐다. 남자들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듯 갈 지(之)자 걸음을 이어갔다. 그는 그런 일행만 골라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엔 ‘강남 전 지역 픽업 가능’이란 문구와 함께 그의 이름 석 자가 크게 박혀 있었다. 유흥주점 광고지였다. 일부는 그를 알아본 듯 빤히 쳐다봤다. 그래도 상관없다. 자존심 따윈 버린 지 오래다. 찬란했던 과거는 이미 가슴속에 묻었다. 》

‘유흥주점 영업부장’이 된 프로게이머

씁쓸함을 지우려는 걸까. 카페에서 만난 성학승 씨(29)는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는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 ‘영업부장’이다. 하지만 7년 전만 해도 대기업에 소속된 유명 프로게이머였다. 컴퓨터게임 ‘스타크래프트(1998년 출시)’를 즐겼던 세대라면 그를 모르는 이가 없다. 팬들은 ‘회사 부장님’을 연상시키는 넉넉한 외모에 순박한 표정으로 저그(스타크래프트의 한 종족)를 플레이하는 그에게 ‘부장 저그’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팬 카페 회원만 1만 명이 훌쩍 넘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3월 처음 유흥주점에 발을 담갔다. 보통 유명인이 ‘밤일’을 하면 자신을 감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본명을 쓰면서 인터넷에 자기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했다. ‘전 프로게이머’라는 경력을 홍보 수단으로 적극 이용했다. 선수 시절 팬 카페에는 그가 일하는 가게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렸다. 스타크래프트 팬들은 ‘멘붕(멘털 붕괴)’에 빠졌다. 팬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며 줄줄이 팬 카페를 탈퇴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그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졌다.

궁금했다. 그는 조용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라고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겠어요?” 그가 내뿜는 담배 연기는 한때 잘나갔던 그의 과거를 보여주는 신기루 같았다.

‘광안리 10만 관중’의 신기루

2005년 7월 30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10만여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모래알처럼 빼곡히 들어찼다. 그곳에선 프로게임단 SK텔레콤과 KTF(현 KT)가 맞붙는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결승전이 한창이었다. 광안리 일대는 ‘성 부장’을 외치는 함성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SK텔레콤이 KTF를 4-1로 꺾고 우승을 확정지은 날이었다. ‘광안리 10만 관중 시대’라 불린 스타크래프트 최고의 전성기였다. 당시 SK텔레콤 유니폼을 입었던 성 씨는 바다에 빠진 것처럼 축하 샴페인 세례를 받았다. 꿈같은 시절이었다.

억대 연봉은 연예인도 부럽지 않게 만들었다.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박정석 등이 속속 억대 연봉자 대열에 합류했다. 하루에 몇 번씩 방송 예능 프로그램 작가의 출연 요청 전화가 왔다. 대기업들도 서로 e스포츠시장에 투자하겠다고 나섰고 공군은 세계 최초로 군인 게임단을 만들어 선수들의 병역 걱정을 덜어줬다. e스포츠는 프로야구 부럽지 않은 국민스포츠로 떠오르는 듯했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스타크래프트는 출시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비슷한 패턴의 경기가 반복됐다. 화려한 3차원(3D) 그래픽으로 무장한 신생 게임들의 도전을 받았다. 어느 날부턴가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e스포츠경기장엔 관객보다 빈자리가 많아졌다.

간신히 연명하던 e스포츠가 2010년 오랜만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제목은 ‘프로게이머, 불법 베팅으로 승부조작’. 그해만 게임단 두 팀이 해체됐고 그 다음 해 3개 팀이 또 사라졌다. 공군은 지난해 11월 해체를 선언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는 2010년 258명에서 2012년 132명으로 급감했다. 100명이 넘는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졸지에 백수가 됐다. 성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프로게이머, ‘화려함과 불안의 공존’

성 씨는 열여섯 살에 동네 PC방에서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했다. 그의 게임 아이디는 ‘MuMyung’(무명)이었다. 그의 기술을 좋아한다며 비슷한 이름을 쓰는 사람이 생겨났다. 스무 살에 실력을 인정받아 SK텔레콤에 입단했다. 2006년 한 해 동안 그의 통장에 찍힌 입금액 숫자를 연말에 합쳐보니 8000만 원이었다.

누구나 화려한 그의 기술을 칭찬했지만 ‘미래’를 말해주진 않았다. 1세대 프로게이머라 ‘선배’라고 부를 사람도 거의 없었다. 어느새 스타리그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졌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플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그의 손에는 한동안 끊었던 담배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는 2006년 11월 공군 프로게임단 1기로 입대했다. 2년여 뒤 구단으로 돌아와보니 그의 책상엔 한참 어린 선수가 앉아 있었다.

1년간 코치를 하다 구단을 떠나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서울 강남에 48평짜리 바를 차렸다. 보증금 8000만 원, 월세 680만 원짜리 큰 가게였다. 매상 장부에는 ‘손님 5, 매상 15만4000원’이 찍힌 날이 수두룩했다. 6개월 뒤 가게 문에는 ‘폐업’이란 딱지가 붙었다. 자존심으로 여기던 고급 외제 차까지 팔아야 했다. 남은 건 빚과 상처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힘을 냈다. 그에게 어렵게 새로운 명함이 생겼다. 직함에는 ‘프로게임단 MBC게임 히어로의 감독대행’이라고 찍혔다. 인터넷에선 ‘게임단 해체설’ 기사가 쏟아졌다. 팀은 재정 확보를 위해 간판선수까지 이적시켰다. 선수단 숙소 일과표에는 ‘훈련-훈련-식사-훈련-훈련’으로 적혀 있었다. 휴식은 단 30분. 이렇게 애썼지만 1년 뒤 그는 구단 관계자로부터 ‘팀을 해체한다’는 내용의 쪽지를 받아야 했다.

이 대목에서 성 씨는 주머니를 뒤져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평생을 바쳐온 게임이 정말 원망스러웠어요. 마지막으로 힘을 내 다시 도전했는데 그것까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막을 내렸잖아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인가 보다 했죠.”

인터뷰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재떨이엔 꽁초가 수북했다.

성 씨는 어렵게 지인에게 한 사업가를 소개받아 5개월 동안 그 밑에서 일했다. 하지만 통장에는 딱 한 번 월급 150만 원이 입금됐을 뿐이다. 해결방법이 없어 우편함을 가득 채운 카드 값 독촉장은 뜯어보지도 못했다.

그때 알게 된 게 유흥주점 영업 일이었다. 한 달 동안은 업소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빨리 뛰는 듯했다. 하지만 그를 반갑게 알아보는 손님이 늘면서 금세 유명해졌다. 수입도 늘면서 열 달 만에 집으로 날아오는 빚독촉 고지서는 절반으로 줄었다. 담담히 인터뷰에 응하던 성 씨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그 어리고 순수했던 게이머가 10여 년간 얼마나 사회에서 고통받았는지 생각해보고 글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 씨가 지난해 3월 한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성학승 근황’이란 글에 단 댓글이다. 미성년자도 볼 수 있는 인터넷 개인방송에 업소 홍보 글을 올린 성 씨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다.

프로게이머는 여전히 초등학생이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장래희망이다. 수많은 아이들은 아직도 연예인 못지않게 프로게이머를 장래 희망으로 꼽는다. 소수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도 아직 있다. ‘1인자’ 이영호(21·KT)는 한해 수입이 3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성 씨는 e스포츠의 미래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로게이머는 20대 중반이면 전성기가 끝나요. 은퇴 후엔 배운 기술을 써먹을 데도 없죠. 요리사는 10년 하면 장인 대우를 받지만 프로게이머는 ‘퇴물’ 신세예요.”

성 씨는 유흥주점을 ‘인생교과서’로 표현했다. 한 푼을 벌기 위해 ‘진상 손님’에게 허리를 깊게 숙이는 일이 이젠 익숙하다고 했다. 게이머 시절에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았던 그다. 게이머였을 때처럼 그에게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일터가 게임단에서 유흥주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e스포츠를 사랑했던 기자의 한탄가(恨歎歌)

매일 밤 인터넷 개인방송 아프리카에는 전직 프로게이머들이 출몰하죠. 집에서 자신이 하는 게임을 팬들에게 보여주며 별풍선(현금화가 가능한 아이템)을 받겠죠. 한때 잘 갖춰진 케이블 방송국 세트에서 대기업 유니폼을 입고 게임했던 사람들인데 말이죠.

한때 연봉 2억5000만 원을 받는 특급 스타였던 ‘천재 테란’ 이윤열 씨(29·전 위메이드)도 있더라고요. 지난해 은퇴 후 낮에는 외국 게임미디어업체인 아주부 코리아에서 일하고 밤에는 개인방송을 하죠. 하지만 불안할 거예요. 아직 병역 의무도 마치지 않았으니까요.

홍진호 씨(31·전 KT)는 당대 최고 스타 임요환 씨(33·SK텔레콤 수석코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였죠. 최근 인터넷에서 포커의 일종으로 사행성이 높아 불법도박장에서 주로 쓰이는 ‘텍사스 홀덤’을 광고하더군요.

이들은 그나마 낫습니다. 대부분의 은퇴 선수는 어디서 뭘 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프로게이머 출신인 성 씨조차 근황을 아는 동료가 몇 없더라고요. 2030세대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스타크래프트는 벌써 추억이 돼버린 걸까요. 시린 제 가슴에 파스라도 한 장 붙이면 좀 나을까요?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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