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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불 켜진 지방자치]무엇이 문제인가

입력 | 2013-01-11 03:00:00

복지비에 허리 휘고… 곳간은 비어가고…
지자체가 쓸수있는 자율예산 10%도 안돼




“4년 전에 비해 도로나 공원·녹지 관리 예산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신규 사업은 엄두조차 못 낼 형편이죠.”

서울 노원구의 한 관계자는 10일 이렇게 말했다. 노원구는 올해 예산 4882억 원 중 58.1%(2836억 원)를 무상보육 등 복지 예산에 투입해야 한다. 지난해(54.9%)에 비해서도 3.2%가 늘어난 금액이다. 이 관계자는 “우리 구는 국고보조금 사업인 복지 예산과 인건비 등을 빼고 나면 실제 자체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은 10%도 안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은평구 역시 보육 예산을 늘리는 바람에 올해 구내 쓰레기 소각장 운영비 36억 원 중 10억 원을 편성하지 못했다.

○ 복지 예산에 허리 휘는 지방자치단체

올해부터 0∼5세 무상보육 정책을 시행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감당해야 하는 복지 예산 부담이 더욱 커져 지방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무상보육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지자체가 올해 부담해야 할 예산은 3조6157억 원이다. 이는 중앙 및 지방정부가 각각 부담하는 ‘매칭’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지자체 부담 예산 중 3607억 원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자체들이 올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보육 예산은 1조700억 원에 달한다.

무상보육뿐 아니라 복지 예산이 늘면서 지자체의 예산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회복지 예산은 2007년 32조 원으로 지방 예산의 28%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2년에는 53조 원으로 21조 원이나 오르면서 지방 예산의 35%를 잠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 예산 중 사회복지 예산 비율은 2005년 평균 14%에서 2011년 20%로 증가했다. 무상보육 정책 확대와 함께 장애인연금, 기초노령연금 수급자도 늘고 있어 지방의 사회복지예산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이대로 가다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장기요양보험, 결식아동 급식 등 정부가 지방에 부담을 지운 복지사업이 줄줄이 중단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모임인 ‘목민관 클럽’에 따르면, 전국 244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절반이 넘는 124개의 지자체가 자체 세입만으로는 인건비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태다.

반면 지방 세수는 늘어나는 지출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방세인 취득·등록세를 인하하는 등 지방세를 비과세·감면했다. 이에 따라 2006년 16.3% 수준이던 지방세 감면율이 2010년에는 23.2%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정부가 감면해 준 지방세는 14조8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2008년 세제 개편으로 지방소득세 및 지방교부세까지 줄어드는 등 지난해 7조8000억 원의 지방 세입이 줄었다.

○ “허울뿐인 1할 지방자치”

사회복지 예산 증가 등으로 지방의 재정자립도 역시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제가 시작했을 때 62.5%였던 지방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52.3%로 떨어졌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재원도 줄고 있다. 한국지방재정학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지방정부의 전체 예산은 151조 원. 이 중 인건비 등 경상비 30조5000억 원, 국고보조사업 60조 원을 제외하면 60조5000억 원이 남는다. 지자체의 법적·의무적 경비 46조1000억 원(추산)을 뺀 13조9000억 원이 지자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율 예산’인 셈이다. 전체 지자체 예산의 9% 수준이다.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이제 지역 특색에 맞는 자체 사업을 추진하는 건 꿈도 꿀 수 없다”라며 “반쪽짜리 지방자치를 넘어 이제는 1할 지방자치”라고 말했다.

정부가 사업을 결정하면 지방정부가 재정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 국고보조사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점도 지방재정의 자율성을 해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현행 법령에서 지자체는 국고보조사업을 인건비보다 먼저 예산에 편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사업비 전액이 아닌 일부만 주고 부족한 재원은 지자체 스스로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고보조사업은 중앙정부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부족한 재정을 지자체에 전가하는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고보조사업은 2004년 233개에 8조 원 규모였지만 지난해에는 980개에 32조 원 규모로 4배가 됐다. 김홍환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연구위원은 “지역의 체육공원에 철봉을 설치하거나 각종 마을가꾸기 사업까지 모두 국고보조사업”이라며 “중앙정부가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사업까지도 국고보조사업으로 편성해 지방재정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지방재정의 자율성을 중앙정부가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음은 현재 운영 중인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2월 개정된 지방재정법에 따르면 지자체가 예산을 부담해야 하는 국가사업은 지방재정부담 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심의 결과가 강제성이 없고 지자체에서 회의 개최를 요구할 수도 없어 실효성이 없다. 지난해 0∼2세 무상보육 예산 고갈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심의위원회가 열렸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한국지방재정학회장인 배인명 서울여대 교수는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지자체가 주민에게서 걷은 세금으로 어떤 사업을 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해 주민의 평가를 받는 구조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재정적으로 중앙정부에 종속돼 있는 한국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8 대 2로 돼 있는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에서 지방세 부분을 더 높이고 국고보조금사업을 더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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