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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필리핀 여행중 납치된 30대 ‘악몽의 3일’

입력 | 2013-01-05 03:00:00

“여행 같이하죠” 접근해 끌고가… 수갑-족쇄 채운뒤 무차별 폭행
실종 홍석동 씨 납치일당 소행




“납치됐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죽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공포를 체험했어요.”

2011년 8월 필리핀에서 납치됐던 황민철(가명·32·회사원) 씨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높아졌다. 그는 필리핀 여행 중 납치된 아들(홍석동 씨)을 그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홍봉의 씨(57) 사연(본보 3일자 A13면 참조)이 보도된 이튿날인 4일 기자의 전화인터뷰에 응했다.

황 씨도 홍석동 씨를 납치한 범인들에게 잡혀 있다가 사흘 만에 풀려났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황 씨는 2011년 8월 19일 7박 8일 일정으로 필리핀 여행을 떠났다. 19일 오후 막탄세부 공항에 도착한 뒤 인근 호텔에 여장을 푼 황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출국 전 한 웹사이트의 ‘세부 자유여행 카페’에 “혼자 필리핀 여행을 가는데 현지에서 같이 여행을 다닐 분 있으면 연락 달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보고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온 것.

황 씨는 호텔 로비에서 이 남자를 만나 인근 맥줏집으로 옮겼다. 이 남자가 납치단의 행동대장인 김성곤이었다. 김성곤은 잠시 후 “한국인 친구가 하는 괜찮은 술집이 있는데 내가 한잔 살 테니 자리를 옮기자”고 제의했고 황 씨는 동의했다. 잠시 후 승합차가 도착했다. 승합차는 도중에 다른 사람을 한 명 더 태웠다. 이 승합차 운전자와 합승객이 바로 납치단의 부두목 김종석과 두목 최세용이었다.

이들은 차가 출발하자마자 돌변했다. 품속에서 칼과 총을 꺼낸 뒤 “너 지금 납치된 거야.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있어”라며 협박했다. 막탄의 한 가정집에 도착하자 황 씨의 손엔 수갑을, 발엔 쇠사슬을 채웠다. “처음에는 갖고 있는 돈만 빼앗고 풀어줄 줄 알았어요. 근데 총으로 위협하고 온몸을 사정없이 때리는데 큰일 났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군요.”

납치범들은 황 씨에게 총을 겨눈 채 한국에 전화를 하라고 시켰다. 1500만 원을 송금하라고 시킨 것. 황 씨는 친구들과 직장동료에게 송금을 받아 전달했다. 그들은 황 씨를 22일 공항으로 데려가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까지 지켜본 뒤 달아났다. 황 씨는 곧바로 필리핀 경찰에 신고했다. 현지 경찰은 황 씨가 감금됐던 집을 찾았지만 납치범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황 씨는 귀국 후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는 “납치범들은 나를 풀어주면서 ‘신고해도 괜찮다, 상관없다’며 필리핀 경찰을 비웃듯이 말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공포감을 알 수 없을 것”이라며 치를 떨었다.

“저야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지만 석동 씨는 아직도 행방조차 모른다면서요. 이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석동 씨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석동 씨를 비롯해 아직도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납치 피해자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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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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