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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코리아/브래드 벅 월터]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새해맞이 풍경

입력 | 2013-01-03 03:00:00


브래드 벅 월터 ADT캡스 대표

어느 나라 사람이건 새해는 특별하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을 걷어내고 신선한 희망을 품는 것처럼 설레고 또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의 새해는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두 번의 새해를 맞는다. 첫 번째는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서, 두 번째는 민족의 명절인 ‘설날’로서 보내는 것이다. 그중 새해와 관련해 내가 겪은 가장 특별한 경험은 일출과 설날 풍경이다.

근래 만나는 임직원마다 새해를 어떻게 맞이했는지 물으면 “일출을 보고 왔다”는 대답을 가장 많이 했다. 찬바람 쌩쌩 부는 바닷가나 높고 험한 산 위에 올라 일출을 바라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한국 사람들은 험한 날씨도 말리지 못할 만큼 그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일출을 본 적이 있다.

1984년 1월 1일 오전 5시 반, 통영에 있는 이순신 동상 앞에서 한국에서 맞는 첫 새해 일출을 감상했다. 그날 많은 한국 사람과 함께 다도해 너머로 웅장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면서 나는 한국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는 태도가 아주 특별하고 경건하다는 생각을 했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첫 해를 보면서 가족이나 지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는 그들의 기도는 그 어떤 거룩한 미사나 예배보다 아름답고 장엄했다.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로 한 해를 시작한다면 그들의 삶은 결코 잘못되거나 빗나가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런 것이 느껴진 것이다.

미국에서 겪었던 새해맞이 풍경은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보통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연말 분위기가 달아오르지만 정작 송년모임은 한두 차례 파티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12월 31일에도 연인이나 친구들과 모여 새해를 맞이한다.

반면 한국의 설 풍경은 어떤가. 한국 사람들은 설날이 다가오면 평소의 두 배, 세 배 걸리는 시간을 운전해 고향을 찾는다. 그렇게 모인 가족은 밤새 음식을 준비하고, 설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한복을 차려 입고 조상께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흰떡과 만두를 넣고 끓인 음식을 나누어 먹고, 부모님과 어르신들을 찾아 감사의 세배를 올린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아이들의 공부와 건강을 축원하는 덕담과 용돈을 건네는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신이 나서 즐거워하는 모습과 어우러져 무척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가장 부러워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어르신에 대한 공경이다. 버스나 전철에서 어르신들에게 주저 않고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또 어르신들에게 전철과 버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본 적이 없다. 이런 어르신에 대한 공경은 약자나 장애인을 배려하는 서양식 에티켓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낳고 길러준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이전 세대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갖출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살 만한 곳 아니던가. 최근 미국의 잇따른 총기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가족과 어르신에 대한 감사와 배려가 살아 있는 한국의 새해 풍경을 미국에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기 다른 세대가 공존하고 배려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풍습들이 예전에 비해 조금씩 잊혀지거나 퇴색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뉴스를 보면 명절을 이용해 여행이나 해외 관광을 나가는 사람들로 공항은 초만원이라고 한다.

아무리 소중한 보물일지라도 보듬고 아끼지 않으면 곧 빛을 잃게 된다. 문화의 경계가 얕아지고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뒤섞이는 세상, 우리 스스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미풍양속을 지키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 가치 역시 빛을 잃을지 모른다. 차가운 바닷가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거룩한 풍경, 온 가족이 모여 조상께 감사하고 서로에 대해 축원과 행복을 나누는 설날 풍경은 한국인들이 두고두고 지켜나가야 할 아름다운 자산이다. 통영 이순신 동상 앞에서 맞았던 새해 해맞이를 기억하며 이맘때면 나누는 멋진 인사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브래드 벅 월터 ADT캡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