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원룸 주인 보셨나요?
‘착한 집주인’ 권기영 씨가 23일 입주자들에게 보낸 단체 문자. 권오남 씨 제공
성탄절을 앞둔 23일 밤 서울 관악구 중앙동의 한 원룸 건물 입주민들의 휴대전화에 이런 문자메시지가 일제히 도착했다. 현관문을 연 입주자들의 눈에는 문 앞 마다 놓인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샴페인, 그리고 자신처럼 놀란 표정의 이웃이 보였다. 선물을 보낸 이는 원룸 주인 권기영 씨(47).
권 씨가 쓴 이벤트 비용은 케이크와 샴페인 20개씩 모두 40만 원. 원룸에 사는 한 입주민이 권 씨의 성탄절 이벤트와 그간의 배려를 2030세대가 많이 찾는 한 웹사이트에 올리자 ‘훈훈한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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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씨의 사연이 인터넷과 인근 서울대에 알려지자 방을 구하고 싶다는 문의가 줄을 이었다. 격려 문자도 왔다. 권 씨의 작은 배려에 2030세대가 이처럼 커다란 울림으로 반응하는 것은 젊은층이 주거 문제로 받는 고통이 그만큼 큼을 보여준다.
‘내 원룸은 비 새는 상태로 2주를 고생해야 고쳐준다’ ‘계약할 때 도시가스라더니 막상 LPG로 보일러를 때는 탓에 난방비로 죽을 지경’ 등 2030세대의 하소연 댓글도 줄을 이었다.
직장인 장남수 씨(27)는 “한겨울에 언 수도관 탓에 방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 전기장판에 불꽃이 튀는데도 주인은 수리를 해주지 않았다”며 “도저히 살 수 없어 계약기간 내에 방을 빼자 복비까지 받아 챙겼다”고 토로했다.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 이한솔 대표는 “권 씨와 같은 ‘착한 집주인’을 만나는 건 복권 당첨 같은 행운”이라며 “개학 철마다 자취생들은 방 구하기 전쟁을 벌이는데 이런 상황이 해결돼야 나쁜 집주인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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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