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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LIFE]뱀파이어 마음을 녹인 따듯한 손

입력 | 2012-12-22 03:00:00

○영화와 심리학 ‘브레이킹 던 파트2’의 르네즈미




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에서 태어난 르네즈미(오른쪽)는 상대 얼굴을 살짝만 만져도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다. 동아일보DB

《 뱀파이어와 인간이 사랑에 빠진다. 차가운 피를 가진 뱀파이어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와
따뜻한 피가 도는 인간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 모든 난관을 극복한 둘은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곤 곧바로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그 결실이 ‘브레이킹 던 파트2’의 르네즈미(매켄지 포이)다. 그녀는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해 신비스러운 매력을 지닌 소녀가 된다. 》

마음을 전달하는 손

르네즈미는 인사를 나눌 때 손을 잡지 않는다. 오묘한 눈동자로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의 볼에 슬며시 손을 갖다 댄다. 그러면 말하지 않고도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 르네즈미는 천진난만한 소녀에 불과하지만 다른 뱀파이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유전자를 절반씩 물려받은 최초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르네즈미는 뱀파이어의 세계에서 ‘낯선 존재’다.

낯설다는 건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예측 불가능성은 불안을 야기한다. 그리고 미지의 대상에 대한 불안은 쉽게 두려움으로 증폭된다. 영화는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뱀파이어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전제하고 있다. 뱀파이어들은 혹시 르네즈미가 과거에 뱀파이어 종족을 위험에 빠뜨렸던 ‘불멸의 아이’는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급기야 뱀파이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볼투리 일가가 르네즈미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움직인다.

에드워드와 벨라는 딸을 지키기 위해 지구상에 흩어져 있는 다른 뱀파이어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르네즈미를 의심한다. 그럴 때마다 르네즈미는 천천히 다가가 의심으로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상대의 뺨에 자신의 손을 가져간다. 그러면 상대의 입가엔 거짓말처럼 따뜻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르네즈미를 위험한 존재가 아닌 사랑스러운 아이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뱀파이어들의 차가운 마음을 눈처럼 녹여버리는 것은 바로 그녀의 작은 손이었다.

온기가 따뜻한 마음을 만든다

영화 ‘브레이킹 던 파트2’의 한 장면. 왼쪽부터 늑대인간 제이콥, 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인 르네즈미, 그리고 그녀의 엄마인 벨라. 동아일보DB

손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는 건 르네즈미만의 능력일까. 사실 몸속이 따뜻한 우리 인간들도 손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곤 한다. 다만 르네즈미가 하듯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생생하게 생각을 전달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은 손길을 통해 단순하지만 큰 의미를 지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따뜻함이다. 우리는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물리적인 따뜻함을 전한다. 잡고, 쓰다듬고, 안는다. 이때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신체기관이 바로 손이다. 악수는 최소한의 물리적 따뜻함을 주고받기 위해서 인류가 고안해낸 생활양식인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상대에게 전달된 물리적인 따뜻함이 자동적으로 심리적인 따뜻함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로런스 윌리엄스와 존 바그가 2008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있는 실험실로 이동하던 중 실험 참여자들에게 컵을 잠시만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한 그룹에 건넨 컵에는 따뜻한 커피가 있었고, 다른 그룹에 준 컵에 든 것은 차가운 아이스커피였다. 실험실에 도착한 참여자들은 A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제시받은 뒤 그의 인상을 평가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렇다. 따뜻한 컵을 들고 있던 그룹이 차가운 컵을 들고 있던 그룹보다 A를 더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물리적인 따뜻함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상대를 더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본 것이다. 연구자들은 두 번째 실험에서 두 그룹이 온열찜질패드와 냉찜질패드를 각각 평가하도록 했다. 그러곤 실험 참여의 대가로 선물을 가져가도록 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따뜻함을 경험한 사람들이 차가움을 경험한 사람들보다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이를 종합해 보면 물리적인 따뜻함은 심리적 따뜻함으로, 또 그 마음은 따뜻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따뜻함의 전달자가 되자

온도 변화와 같은 물리적 따뜻함이 신뢰, 공감 등의 심리적 따뜻함으로 변환될 수 있는 이유는 뇌 과학으로도 설명된다. 우리의 대뇌에는 전두엽 아래에 ‘뇌섬엽(insula)’이라는 부위가 숨겨져 있는데 이곳의 피질은 물리적, 심리적인 따뜻함을 함께 처리한다. 이것이 바로 물리적인 따뜻함을 경험하면 심리적인 따뜻함이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 이유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 안에서 따뜻한 어머니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냉정한 일을 경험하면 실내 온도를 더 춥게 지각하게 되는 것도 뇌섬엽의 역할 때문이다.

상대를 따뜻하게 만들어 온화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설득 방식이다. 르네즈미의 작은 손을 통해 전해진 따뜻함은 뱀파이어들을 설득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따뜻함을 전하려 함부로 상대의 뺨에 손을 갖다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굳이 뺨일 필요는 없다. 악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온기를 전할 수 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어도 좋겠다. 어떻게든 우리의 따뜻함을 전달하는 순간, 주변은 이미 우리에게도 따뜻해지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심리학) wooyoung@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