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산업부 기자
주인공은 ‘노력이 나를 만든다’라는 좌우명을 신주처럼 모시고 살았다. 공모전 수상, 학점 관리 등 가능한 ‘스펙’은 쌓을 대로 쌓았다. 그러나 최신 트렌드 패션을 걸칠 여유가 없고 ‘외국물’ 한번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디자이너 업계에 입성하지도 못한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선 오너가(家) 출신 팀장에게서 “유학을 안 다녀온 게 문제라기 보단, 유학을 다녀올 수 없는 처지에서 나오는 안목이 후지다”라는 비수 꽂히는 말을 듣는다. 노력으로 만회하려는 주인공에게 이 팀장은 “안목은 태어날 때부터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거니까,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며 쐐기를 박는다.
남자 하나 잘 만나 팔자를 고쳐 보겠다는 주인공의 행보가 여성 시청자들에게 곱게만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블로그와 SNS를 통해 전해지는 이들의 ‘감상평’은 공감 쪽에 더 가깝다. 청년실업,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하우스푸어, 개인의 능력만으로 상류사회로 진출할 가능성이 낮아진 현실 등을 한꺼번에 겪게 된 주인공의 처지가 우리 사회의 현재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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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보다 훨씬 비싼 럭셔리 브랜드들은, 갖지 않으면 뒤처져 보이도록 사기를 친다”라고 말하는 여자 주인공에게 해외 유명 브랜드 지사장으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항변한다.
“우린 그저 살짝 건드렸을 뿐이야. 남들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여자들의 못된 된장 기질을. 탓하려거든 당신네 여자들, 그 된장 기질이나 탓해.”
대학원에서 럭셔리 브랜드 경영학을 전공한 기자는 수업 첫날, 학교 측이 마련한 과정이 소비자 심리학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지도 교수는 매슬로의 ‘욕구 계층 이론’을 논하며 비이성적으로 비싼 럭셔리 아이템들이 인종과 국경을 넘나들며 수백 년 이상 사랑을 받게 된 이유를 얘기했다. 소비 산업을 움직이는 엔진이 인간의 욕망임을 학문적으로도 인정한 셈이다. 신분 상승의 욕구를 욕망의 상징격인 럭셔리 아이템을 내세워 풀었기에 드라마의 구성이 더 탄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라의 거사인 대통령 선거를 치르자마자 한가하게 럭셔리와 드라마를 논하고 싶어진 것은 드라마에 등장한 현대 젊은이들의 욕망을 우리나라를 이끌 새로운 얼굴들이 헤아려 줬으면 하는 기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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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