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1, 1, 8, 10, 9, 3, 2, 6, 4, 7, 5.
이 숫자들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가만히 살펴보면 숫자는 1부터 12까지 모두 12개다. 눈썰미 있는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챘을 수도 있겠다. 12월, 11월, 1월…. 그렇다면 그 순서를 무슨 근거로 정한 것일까.
○ 나이들수록 “연말이 괴로워”
전반적으로 성별, 연령대별 차이가 크진 않았다. 그 대신에 몇 가지는 눈에 띈다. 우선 여성들(10.4%)은 남성들(5.5%)보다 올 9월에 대한 기억이 훨씬 좋지 않았다. 추석 명절이 끼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연령대별로는 20대와 50대가 주로 대척점에 섰다. 3월(20대 8.9%, 50대 5.6%)과 9월(20대 10.0%, 50대 5.6%)은 20대가 더 싫어하는 달이었다. 반면에 여름휴가 시즌인 8월(20대 7.9%, 50대 12.2%)은 50대의 눈 밖에 났다.
○ 기준은 ‘돈’
그렇다면 응답자들은 왜 특정한 달을 유독 최악이었다고 했을까. 1위는 ‘금전적 손해’(20.2%)였다. ‘주식 폭락’ ‘임금 동결’ ‘임금 체불’ ‘전월세 폭등’ ‘자동차 사고’ 등으로 재정상태가 흔들린 것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이다. 특히 이는 나이가 들수록 정도가 더 심했다. 50대의 28.9%, 40대의 22.0%가 금전적 이유 때문에 최악의 달로 뽑았다. 30대와 20대는 같은 답변이 각각 19.7%와 14.7%였다.
2, 3위는 ‘업무성과 미흡·중요한 시험에서의 부진’(15.0%)과 ‘휴가 취미 자기계발 등 개인사적 일에서의 실망’(13.8%)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승진시험 낙방’ ‘이직 실패’ ‘비효율적 반복 업무’ 등 직장인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답변이 많았다. 전체로 봐선 ‘직장 동료와의 갈등’(9.9%)이 ‘배우자 또는 애인과의 갈등’(7.5%), ‘부모(시댁, 처가 포함)·형제·자녀와의 갈등’(5.0%)보다 심각했다. 연애를 많이 하는 20대만큼은 ‘배우자 또는 애인과의 갈등’(13.7%) 때문에 최악의 달로 선정한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명절이나 기념일 스트레스는 50대(11.1%)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 나의 적은 나
누구나 올 한 해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고통받고, 또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모두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이다. 동시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를 가장 괴롭혔던 사람. 사람들은 누구로부터 가장 큰 굴욕감을 느꼈을까.
놀랍게도 3명 중 1명은 ‘나 자신’을 선택했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로 인해 스스로 굴욕감을 느꼈다는 얘기다. 30대(39.0%)의 자책감이 가장 컸다. 나를 제외한 타인 중에서는 ‘직장상사’(25.7%)가 1위에 꼽혔다. 그것도 압도적인 표 차로. 남성(26.9%)과 여성(24.2%) 모두 상사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40대는 샌드위치였다. 상사(29.2%)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컸지만 ‘잘나가는 동기나 후배’(10.2%)가 준 굴욕 역시 어깨를 처지게 만들었다. 50대는 동기나 후배(5.6%)보다는 ‘학교 동창이나 친구’(11.1%)에게서 상대적으로 많은 굴욕을 당했다. 이래저래 쓸쓸한 중년들이다.
김창덕·권기범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