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캘리포니아공대 윤경식 박사팀 ‘몸의 동기화’ 현상 과학적 규명
에버릿 컬렉션 제공
스킨십이 사람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준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조금 어색해도 먼저 손을 내밀면 상대방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게 돼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몸의 동기화’현상이 과학적으로 규명됐다.
○ 먼저 뻗어라. 그러면 마법이 펼쳐진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SF영화 ‘ET’에서 외계인 ET가 손가락을 내밀자 주인공 엘리엇도 손가락을 내미는 모습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두 사람을 마주 앉히고 팔을 펴 집게손가락으로 상대방을 가리키게 했다. 손가락 사이 거리를 10cm 정도로 두고 상대방 손가락을 보게 했더니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적외선 카메라로 움직임을 관측하고, 머리에 붙인 전극으로는 뇌파를 측정했다. 그 결과, 두 손가락의 움직임이 0.1mm 수준까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의 뇌에서 친밀감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담당하는 영역도 활성화됐다.
연구팀은 한 사람에게 손가락을 임의대로 움직이고 상대방은 따라하도록 했다. 네 차례 반복한 뒤, 손가락의 움직임을 측정했더니 동기화 정도가 약 1.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 박사는 “친구와 걸을 때 발걸음이 맞춰지고,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완벽하게 합주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라며 “싸이의 말춤을 같이 출 때 친해지는 느낌이 드는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말춤을 추면 서로의 뇌가 동기화돼 친밀감이 높아지고, 이미 친한 사람들이라면 동기화가 더 잘돼 멋진 군무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방과학연구소(DARPA)는 이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한 사람의 뇌에서 나온 신호를 다른 사람의 뇌에 직접 전달하는 것을 연구 중이다. 한 명이 위험 신호를 감지했을 때 다른 군인들의 뇌에 이 신호를 가장 빨리 전달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스킨십은 상대방에 대한 동질감뿐만 아니라 동료 간 사기 진작과 협동심, 업무 성과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특히 스포츠 경기에서 스킨십은 팀의 승률과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20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마이클 크라우스 박사팀은 2008∼2009년 시즌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선수들 간 스킨십의 횟수와 팀 성적을 분석했다. 농구는 같은 팀원끼리 주먹을 맞대거나 손바닥과 가슴을 치는 등 스킨십이 많은 종목이다.
그 결과 스킨십을 많이 나누는 팀의 승률이 높았고, 선수 개개인도 스킨십을 많이 하는 선수들 간에 패스 성공률이 좋았다. 이에 대해 크라우스 박사는 “선수들이 스킨십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서로에게 신뢰감을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 배가 아프거나 다리가 저릴 때 이상하게도 ‘엄마손’이 한번 스쳐 지나가면 아픈 것이 싹 사라지는 기억을 어렴풋이 갖고 있다. 심리적 약 효과를 나타내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엄마손’은 아픔을 가시게 하고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이 엄마손의 비밀도 풀렸다.
사람에게도 NOMPC 같은 단백질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생명체가 어떻게 촉각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기쁨과 편안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이재웅·김윤미·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