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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WISDOM]허무맹랑하지 않은 ‘인류 아시아 기원설’

입력 | 2012-12-08 03:00:00

⊙ 인류진화, 뜨거운 주제들… 호모 에렉투스의 기원




아프리카? 아시아? 헷갈리는 인류의 고향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828m)입니다. 여기에 중국이 최근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높이 838m의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층수는 220층이나 되는데 놀라운 것은 공사기간입니다. 단 90일 만에 건물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높이와 속도, 두 가지 분야에서 기록을 내겠다는 속셈이지요.

이렇게 세계 최고를 좋아하는 중국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류의 조상이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찌 보면 황당하게 들리는 이 주장이 자세히 알아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최초의 인류는 물론 아프리카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로 넘어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들 역시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지만, 정말로 아시아가 고향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해부학자였던 외젠 뒤부아(1858∼1940)는 인류의 조상은 유인원의 사촌이므로 인류 직계 조상의 화석도 유인원이 사는 숲에서 나올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돈을 들여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을 발굴했습니다. 결국 1891년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오래된 인류 화석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지요. 바로 ‘자바인’이었습니다.

자바인 화석은 머리뼈가 작고 납작한 대신, 넓적다리뼈는 현생인류와 거의 똑같이 생겼습니다. 이 말은 자바인이 현생인류에 비해 머리는 덜 똑똑하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뒤부아는 자바인에게 ‘똑바로 서서 걸은 유인원 인간’이란 의미인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종은 훗날 호모 에렉투스의 일종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19세기 말이었던 당시, ‘똑똑함을 자랑하는’ 인류의 조상이 머리보다 다리가 먼저 발달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줬습니다. 뒤부아는 학계와 사회의 냉대 속에서 잊혀졌고, 우울하게 여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1920년대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세 대륙에서 인류의 직계조상 자리를 놓고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먼저 영국 런던 근교인 필트다운에서 ‘필트다운인’이 발견됐습니다. 이 고인류는 사람들이 인류의 조상에게 기대하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크고 둥근 머리뼈와 무시무시하게 생긴 이빨입니다. 뛰어난 두뇌와 위협적인 신체조건을 갖춘 용맹한 모습이었지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란 타이틀이 무색해지던, 쇠락해가던 당시 대영제국의 사람들은 이 화석에서 작은 위안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필트다운인은 1940년대에 조작된 가짜로 판명됐습니다.

두 번째는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타웅 아이’란 작은 화석입니다. 호주의 고인류학자 레이먼드 다트(1893∼1988)가 발견한 새로운 종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였죠. 이 종은 지금은 최초의 인류 후보로 꼽힙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역시 무시당했습니다. 미개하다고 업신당하던 아프리카에서 인간 같은 훌륭한 종의 조상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인류학자들은 두 후보를 대신할 다음 후보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시아의 중국에서 발견된 베이징인이었습니다.

▶본보 11월 17일~18일자 B7면 참조… [O2]사라진 베이징인 화석, 야쿠자 금고에?

베이징인은 가치를 재평가 받은 자바인과 함께 1940년대 들어 호모 에렉투스에 포함됐습니다. 베이징인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두뇌 용량의 두 배에 이르는 큰 머리(현대인의 3분의 2)를 가지고 있어 호모 에렉투스의 대표가 됐고,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최초의 직계 조상이 중국에서 나타났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바인, 180만년 전까지 올라간다는 연구도
중국의 주장은 1970년대 이후 동아프리카에서 150만∼200만 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면서 약해졌습니다. 베이징인만 한 머리에 현생인류와 맞먹을 만큼 큰 몸집을 지닌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가 뛰어난 지능과 체력, 우수한 사냥도구를 바탕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갔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지금 정설로 여겨지는 이 가설에 따르면, 베이징인과 자바인은 그런 거대한 물줄기의 일부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1990년대에 자바인의 연대가 18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신뢰성이 낮아 아직 완전히 믿기 힘듭니다만, 만약 맞는다면 아시아에서 인류의 직계조상이 나왔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더구나 터키 북동쪽에 있는 작은 나라 조지아의 드마니시 지방에서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 이상한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이 화석은 머리도 몸집도 별로 크지 않았고, 함께 발견된 석기 역시 그다지 세련되지 않았습니다. 연대는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와 동시대인 180만 년 전이었습니다. 드마니시 고인류는 호모 에렉투스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사냥을 잘하지도 못했지만, 아주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가 됩니다. 180만 년 전이라니 자바인의 새로운 측정 연대와 시기도 같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런 시나리오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 이전에 이미 작은 머리와 몸집을 지닌 인류의 조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허술한 도구를 가지고 아프리카를 떠납니다. 도중에 조지아의 드마니시를 거쳐 인도네시아 자바까지 이주하지요. 이후 이 집단들 중 일부가 살아남아 아시아에서 진화합니다. 그게 바로 호모 에렉투스입니다. 이들은 아시아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 역시 그 후손입니다.

아직까지는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황당무계한 주장은 아닙니다. 이제 아프리카 바깥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기원했을 가능성은 예전보다 높아졌습니다. 그들이 아시아에서 기원했을지에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상희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sang-hee.lee@ucr.edu  
정리=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 이 글은 ‘과학동아’와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에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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